나의 한국현대사(1959-2014, 55년의 기록) – 유시민지음 / 돌베개
최근 정치인에서 인세로 먹고사는 작가로 직업을 전직(전향?) 한 유시민 작가(!)의 눈으로 본 55년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책 표지 바로 안쪽에 그는 자신을 "쁘띠 부르주아 계층의 대구, 경북 출신 지식 엘리트로서 젊은 나이에 이름을 알리고 출세를 했지만 결국 정치에 실패한 후 문필업으로 돌아온 자유주의자." 그는 최근의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정치에서 은퇴하고 낚시로 소일을 하면서 세월을 낚으며 생각을 정리하면서 책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낚시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으나 아는 지인을 통해서 낚시할 때 심심하면 말벗할 사람이라도 되어줄 의향이 있는 그의 글과 책의 애독자(물론 그와는 일면식도 없다..ㅎㅎ)라고 말이나 넣어 봐달라고 했는데, 전달이 됐는지 안 됐는지 모르겠으나 전했는지 안 전했는지 기억도 희미해질 정도로 시간이 흘러버리고 이 책은 나와버렸다.
2014년 7월 초판 1쇄가 나왔다. 언제 봐야지 하다가 1년이 훌쩍 지나가고 인연이 된 책
평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글을 써서 매체나 신문사 혹은 출판사에 넘기기로 소문난 저자는 1985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때 ‘항소이유서’를 27세의 나이로 펜을 들고 한 숨 두 숨, 세 숨쉬기도 전에 머릿속에 생각을 떠올리고 정리하면서 글로 써 내려가면서도 앞뒤 전후 문맥과 논리를 잘 가다듬어 낸 것으로 유명세를 청년 시절부터 글과 관련해서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사람.
예전에 한번 접한 적이 있던 유명한 ‘유시민 항소이유서’를 검색을 통해서 꺼내서 한 번 더 읽어보았는데…. 30년이 지났음에도 지금도 유효한 내용들이 제법 있다… 그만큼 우리는 멀리 온 것이지만 그 멀리 온 만큼 동 비율로 발전하지 못한 부분들도 많아 보인다.(인터넷 세상에 이렇게 자료를 쉽게 찾아보는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과거에는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던 시절에 비하면~)
아마도 이때부터 그는 말이나 정치보다는 글에 더 재주가 많았나 보다.(실제 그의 연설을 영상과 소리로 함께 듣는 사람들 중에는 그에 대한 태생적 반감을 표명하는 사람들도 꽤 있어 보인다.) 그의 글은 간결하면서도 할 말은 꼭 하면서도 흐름이 자연스럽다는 장점이 있다.
아무튼 근현대사를 평소 접하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읽기 편한 책이다. 물론 훈련된 사람들은 그의 글에서 상상력을 동원해서 좀 더 멀리 나갈 수 있도록 딱하고 싶은 이야기까지만 썼다.(너무 깊이 들어가진 않았다는 이야기)
그의 말을 빌리자면, "사실을 많이 담기보다는 많은 사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잘 알려진 사실들에 대한 생각을 말하려고 노력했다. 1959년부터 시작한 것은 내가 그때 태어났기 때문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 과거를 회고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이제 50대 중반이 된 우리 세대는 아직 인생을 회고할 나이가 아니다. 아직은 과거보다 미래에 시선을 두어야 한다."라고…
덕분에 어렵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쉽지도 않은 책이 되었다.
인류가 생긴지 2~300만 년, 우리는 문자가 생기기 이전에는 선조의 머릿속 기억 공간에 쌓여있는 삶의 방법서를 구술을 통해서 전달받아 생존과 자손의 번식을 통해서 지금에 이른다. 머릿속 백과사전을 다음 세대의 머릿속으로 이식하는 중차대한 작업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그 이야기를 잔소리라고 생각하면서 들었고, 어느덧 무슨 일을 할 때가 되면 과거를 기억하면서 지금 갈 길의 좌표로 삼고 있는 나를 보곤 한다.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물으면 어떤 답을 주셨을까?"라고….
마찬가지로 나도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면 ‘내가 지금 내 아이들에게 지금의 문제점과 미래의 방향에 대해서 들려주는 내 50년산 지혜들이 잔소리로 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을 자주 하면서 전하는 말의 농도와 수위를 조절하게 된다.
영화 뿌리에서 주인공 쿤타킨테가 역사를 구술하는 구술사의 입으로 전해지는 계보 속에서 자신의 조상을 발견하듯. 유시민은 그의 책 『나의 한국 현대사』를 통해서 그의 시각과 사상으로 지난 55년간의 한국의 현대사를 그가 바라보고 후손에 전하고 싶어서 「유시민이 바라보는 한국 현대사」를 남겼을지도 모른다.
TV를 포함한 영상매체를 통해서 조작, 가공되어 나오는 방송들은 거짓이라고, 신문을 포함한 매체들은 자신들의 사상과 방식에 맞는 글들만이 생명을 가지고 지면에 오를 수 있으며,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는 그 무엇들도 남겨지거나 대중에 공표되는 것을 용서되지 않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고 보기에 그가 보는, ‘그가 전하는 한국 현대사’를 뒷날에 남기고자 정리해서 웅변한다.
‘생존과 자손의 안녕’을 위해서 우리들 각자의 머리와 가슴에 이미 들어와있는 미래, 지금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각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시간의 물결을 타고 나와 대한민국의 미래가 된다고 그는 믿는다.
"더 좋은 미래를 만들고자 한다면 매 순간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 좋은 것을 쌓아야 하고, 우리 안에 만들어야 할 좋은 것의 목록에는 역사에 대한 공명도 들어 있다. 미래는 우리 안에 이미 와 있다."라고 그의 책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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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이 모두에게 살기 좋은 나라인 것은 결코 아니다. 1959년에는 평등하게 가난한 독재국가였던 대한민국이 2014년 현재는 불평등하게 풍요로운 민주국가가 되어 있다.
–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프랑스 정치가 토크빌
– 혁명인지 쿠데타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그는 알고 있는 모든 남로당 인맥을 털어놓고 수사에 협조한 끝에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피고인 중 유일하게 풀려났다. 육군본부 정보국장 백선엽과 미군 고문관 하우삼이 은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백선엽 장군을 극진하게 예우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예편을 당해 앞날이 막막했던 박정희는 한국전쟁이 터지자 소령으로 현역에 복귀했으며,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에 대구에서 김호남과 이혼하고 육영수와 결혼했다. 만약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그는 쿠데타를 할 수도 대통령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 5.16 당시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군단 교관이었던 전두환 대위는 5월 17일 육군본부로 무작정 박정희 소장을 찾아가 독대했다. 그런 다음 쿠데타 군 실세인 양 육사 교장을 압박하고 생도 등을 선동해 쿠데타 지지 시위를 벌이게 했다. 5월 18일 오전 육사생도와 소속 장교, 졸업생 1,000여 명은 동대문과 남대문을 거쳐 서울시청 광장으로 행진했다. 전두환 대위가 박정희 소장을 독대하고 육사생도의 시가행진을 사주한 것이 사실이라고 확인할 수는 없지만, 박정희 국가최고재건회의 의장이 그를 비서관으로 발탁한 것을 보면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이때 인연을 맺은 것은 분명하다.
– 4.19와 5.16둘 모두 일정한 성공을 이루었다. 4.19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5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점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 박정희 정부는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배한 것은 기회균등과 공정경쟁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었다.
– 한국경제는 시장경제체제가 아니었다. 산업화 이전의 대한민국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외국이나 한국은행에서 돈을 빌려 만든 투자 재원을 정부가 기업에 직접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정부의 실체는 박정희 대통령과 측근 참모들이었다. 특혜가 있는 곳에는 정경유착과 부패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재벌체제가 탄생했다.
–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은 각자의 결정에 따라 급여 일부를 가족에게 송금했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외화 획득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때 한국 정부가 그들의 급여를 담보로 상업차관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독일의 법률은 근로계약에 따라 독일 기업이 한국인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급료를 담보로 잡고 정부 차관을 제공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독일은 공적개발원조ODA를 많이 하는 나라로서 우리나라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통상적 정부 차관을 제공했을 뿐이다.
– 구제금융을 상환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IMF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제도들이 신자유주의로 표현되는 국제 경제환경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사회경제적 양극화라는 사회악을 키웠다.
– 민주주의는 최선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해 최대의 선을 실현하도록 하는 제도가 아니다.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악을 마음껏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민주주의는 현실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악을 최소화 함으로써 사회를 지속적으로 개량해나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이렇게 본다면 전제정치를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민중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정당한 행위가 된다. 단, 민중의 저항권 행사는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세우는 데서 멈추어야 한다. – 포퍼의 주장이다. 대한민국의 정치혁명은 바로 그런 혁명이었다. 4.19 혁명과 6월 민주 항쟁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세운 바로 그 지점에서 멈추었다.
– 북한은 매우 다루기 힘든 위험요소다. 북한을 상대하는 데는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 하나는 제거하는 것, 다른 하나는 관리하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전두환 대통령까지 우리 정부는 북한을 제거해야 할 위험으로 간주했다. 북한을 관리해야 할 위험으로 본 것은 노태우 정부가 처음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남북관계가 퇴행한 것은 정부의 대북정책 관점이 제거와 관리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방황했기 때문.
– 독일 통일은 ‘흡수통일’이 아니라 ‘합의통일’이었다. 동독의 사회주의 체제는 대책 없이 붕괴하지 않았다. 동독 정부와 국민이 서독 체제로 통합하기를 원했고, 서독이 그것을 받아들여 질서 정연하게 통일을 한 것이다. 주위의 나라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등이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으며, 진보와 보수진영이 정권을 서로 교체하면서도 동독에 대한 정책을 그대로 계승했고, 동독 또한 무너지는 자신의 체제를 지키려고 피를 흘리지 않는 방향을 택했다. 흡수한 통일이 아니라 합의한 통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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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그를 채록하는 데는 판에 박힌 형틀에 들이 붇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을 여러 사람이 관찰하고 그리고 묘사해야 하는 것이다. 자칫 한가지 모습만 그리다 보면 점잖게 서있는 형상만 보급하게 되고, 밥 먹고, 자고, 사랑하고, 똥 싸고, 사냥하고, 싸우는 모습은 못 보게 되니…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논하고 평하고 우리의 미래를 그려가는 지금으로 진행형으로 관리해야 할진대… 다시 국정교과서 국사책이 나오니 마니 하는 이야기가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은 또 무슨 역사에 죄를 짓는 짓인가….
그러고 우리는 일본의 역사 왜곡을, 중국의 동북공정을 이겨 내면서 발해가 우리 땅이고 독도가 내 것이라 주장할 힘이 생기겠는가… 살아서 토론하고 역사 속 사실의 배경을 토론하면서 밝은 역사를 만들어갈 원동력이 생기겠는가….
아니…
그런 원동력, 불씨를 꺼트리려는 행위는 아닌가 돌아볼 일이다.
그래서 그의 "나의 한국현대사"와 "우리의 한국현대사"가 중요한 것이다.
당연히 "내 한국현대사"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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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유시민지음 / 돌베개] 지난 55년의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빠짐없는 기록이 아니라 저자가 이 시대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사실들에 대한 기록하여 2014년 현재의 일을 이해하고 가까운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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