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외사 – 설흔 지음 / 돌베개

글쓴이 조통 | 작성일 2015.9.24 | 목록
발행일 2015년 5월 18일 | 면수 236쪽 | 판형 변형판 140x210 | 장정 소프트커버 | 가격 13,000원

열하일기 외사 – 설흔 지음 / 돌베개

『연암집』과 『열하일기』로 대표되는 연암의 글과 조선왕조실록, 그리고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여러 자료 등의 사료들을 종합해서 그 주위의 사람들과 연암과의 관계를 재구성했다.

사료 상의 팩트를 끌어오고 그 상황에 맞게 앞뒤 출연자를 등장시켜 실제 당시 사람들이 말을 주고받는 소설처럼 外史를 만들었다. 완전히 허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이덕무, 박제가, 홍대용, 백동수, 유금, 유득공, 서상수, 이서구 등 북학파 혹은 백탑파 중심 인물 들 중 이 책 속의 재구성 주인공은 당연 연암과 정조 그리고 이덕무, 박제가 등이 등장 인물.

벗 남공철로부터 온 편지를 읽는 잠깐의 순간에 문득 일어난 상념들을 230여 페이지에 걸쳐 쭈~욱 늘여 상세하고 미묘하게 묘사한다. 어찌 보면 상상력의 발휘고 어찌 보면 당시 정황의 실감 나는 재구성이라 할 수 있을 터인데….

‘연암이 문체반정으로 정조로부터 새 글을 지어 올리라는 명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전달받아 고민했다.’라는 한 줄도 채 안 되는 이야기를 1~4장에 걸쳐서 무려 230여 쪽에 걸쳐 분석하고 재구성했다.

덕분에 연암의 한두 시간을 쫓아다니는데 5일이나 걸렸다. ㅎㅎ

가끔씩 사료를 보면서 겹치는 여러 자료들을 볼 때마다 설흔이 쓴 이 책과 비슷한 상상놀이를 해보곤 했었다.

위화도 회군 때 이성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세조는 세검정에서 칼을 씻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의주까지 피난 간 선조의 멘탈은 어떠했을까…… 한강 다리를 폭파하라고 명령하고 잠이 왔을까…… 발포 명령을 내린 자는 아직도 왜 반성을 안 하고 있을까…… 최근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간접살인을 하는 영조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상상놀이를 하다 보면 어느새 사료들을 뒤적이고 책장을 급히 넘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이런 상상놀이가 글로 엮으면 소설이 되고, 시나리오로 만들면 영화와 드라마가 된다. 최근 사람들이 즐겨 보는 영화와 드라마는 일제 앞잡이를 제거하는 독립군 이야기인 「암살」과 광해군대를 그린 드라마 「화정」과 최근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다룬 「사도」가 한참 뜨고 있기도 하다.

「암살」에 버금가는 「연암」이라는 영화도 한 편 나올 만도 한데~ ㅎㅎ

상업영화와 드라마는 워낙 사료들을 심하게 비틀고 특정한 한가지 사실을 부풀려서 스토리라인을 짜고 흥미를 위해서 남녀상열지사를 꼭 집어넣어서 묘사하기에 멀리하는데…

최근 주위에서 이제는 무슨 영화와 드라마에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니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왜냐…

뭐 아는 게 있어야 답을 하지…ㅠ.ㅠ

최근 주위 사람에게 쥐뿔도 모르면서 너무 아는 척을 많이 했나 보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아무튼,

『열하일기 외사』를 읽으며 상상놀이를 하다 보니,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당시의 사건들을 비교해보는 일명 「현실놀이」를 하게 된다.

문체반정이 일어난 것은 무려 200여 년 전인 1792년이니 1752년에 태어난 왕의 나이 40세, 즉위가 1776년이니 재위 16년이면서 1800년에 승하했으니 그가 죽기 8년 전.

아마도 탄탄한 지배 구조 하에서 사상적인 통제까지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정조는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정조는 문체반정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출판물 검열과 수입 도서 중 금서를 정해서 수입을 불가하게 했었고, 문장을 만드는 과정과 내용을 평가하여 과거 시험 점수를 낮게 주는 것은 물론 차기 응시 기회마저 박탈시키는 일도 있었다는 사실을 만나게 된다.

한국 근/현대사 속 금서목록 지정과 금서를 열람한 자에게 직, 간접적으로 불이익을 제공한 사람은 정조가 최초가 아닐까 싶다.

그 핵심에 존재하던 연암의 「열하일기」 와 그와 관련한 전해오는 여러 문건들 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편다.

얼마 전 김혈조 번역 『열하일기』 풀버전을 어렵게 어렵게 겨우 완독(무려 3개월이나 걸렸다…) 이후로 그 여운이 채 빠지기도 전에 이 『열하일기 외사』를 만나본 덕분에 내용 이해는 빨랐다.

절대불변의 진리는 고전 원본을 완독해둘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재확인한 또 한차례의 계기가 됐다.(한 번이라도 완독한 고전은 두고두고 샘솟는 샘물처럼 좋은 자원이 된다.)

그나저나 책은 몸 져 누워있는 이덕무가 박제가를 향해서 쓴 편지 속에서 그들의 정이 얼마나 끈끈했는지도 끌어내고, 성격이 칼보다 날카로운 박제가는 절대 문체를 꺾고 자송문을 써낼 사람이 아니란 것을 이덕무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터라 몸 져 누운 상태에서도 붓을 들어 조언을 하는 모습도 그린다.

​찬찬히 읽다 보면 알겠지만 198페이지에 가서야 처음부터 잔잔히 내리던 눈이 마침내 그치고 벗은 떠나고 또다른 서찰을 통해서 이덕무가 자송문을 쓰는 도중에 죽었다는 전갈을 받는다.

물론 그때까지도 연암은 고민 중이었고~

다시 눈이 더 짙게 내리며 남자는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상상력과 구성력을 동원해야 할 독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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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단의 근원을 뽑아 없애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잡서들을 중국에서 사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번 사행에는 더욱더 엄히 단속하여 패관소기는 말할 것도 없고, 경서나 『사기』라도 당판唐版인 경우 절대로 가지고 오지 말도록 하라. 압록강을 건너 돌아올 때 엄중히 조사해서 압수한 것들은 바로 교서관에 보내 널리 유포되는 폐단이 없게 하라.

– 홍군은 벗을 사귐에 있어 통달의 경지에 이르렀군. 내 지금에야 벗 사귀는 도리를 알았도다. 그가 누구를 벗하는지 살펴보고, 누구의 벗이 되는지 살펴보며, 또한 누구와 벗하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것이 바로 내가 벗을 사귀는 방법이다.

– 남자가 남공철을 통해 받은 한 통의 편지는 그러므로 실은 꽤 긴 세월을 기다려 도착한 것이었다. 임금은 즉흥적으로 남공철을 시켜 『열하일기』를 고치라고 명령한 편지를 쓰게 한 것이 아니었다. 임금은 『열하일기』가 처음 쓰인 그때부터 남자를 지켜보았고, 여러 차례 경고와 회유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칼을 뽑아 든 것이었다. 아니다, 어쩌면 임금은 남자가 문명을 떨치던 그때부터 남자를 지켜보았을 수도 있다. 남자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건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임금은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 박제가는 자신의 식탐을 훌륭한 글로 승화시킨 사람이었다. 『시선』이라는 책에 쓴 서문에서 박제가는 "맛없는 음식은 오히려 먹지 않는다. 시를 가려 뽑는 방법도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하며 시를 가려 뽑는 일을 음식의 맛에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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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외사 - 설흔 지음 / 돌베개] 조선사를 통틀어 많은 반향을 일으킨 책 중 한 권인 열하일기를 중심으로 여러 사료들 속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결합해서 문체반정의 중심에 서 있었던 연암과 주위 사람들 사이의 內外面을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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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 속에 담긴 표지를 포함한 여러 그림들은 원래는 컬러로 그려진 그림인데, 책임 편집자는 마지막에 이 책에 들어가는 도판을 모두 흑백으로 바꾼듯하다. 책을 보는 내내 왜 그랬을까… 했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고 책을 덮으면 비로소 이해가 간다.

마당에 있는 매화나무가 쏟아지는 눈 덕분에 어디에 있는지도 잘 보이지 않는 밤, 그 마당을 뒤로하고 삐거덕대는 초가집 문을 닫고 남자는 잠을 청하러 들어간다. 이 마지막 대목의 마침표를 읽고 다음 장을 넘기면 작은 초가 한 채가 있는 그림이 나온다.

갖은 상념들을 쏟아지는 눈 속에 묻어버리고 오랫동안 잠들어있고 싶어 봉창을 닫으며 뒤돌아 눕는 남자의 마음을 그림으로 대변하자면…

때론 화려하고 정밀한 묘사가 낳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화려한 색에 감성을 뺏겨 생각을 놓치게 된다. 오히려 투박하고 담백한 흐릿하면서도 굵은 몇 가 닭의 선 만으로 만들어진 그림을 들여다보면 숨어있는 감흥들이 솟아오름을 느낄 수 있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흑백이 훨씬 잘 어울린다는 것….

9 +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