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진에서 사진으로,
제의적 대상에서 이미지 정치의 도구로
고종의 초상을 통해 바라본 우리 근대 초기의 시각문화
고종은 궁궐 밖으로 왕의 이미지가 유포된 조선 최초의 왕이었다. 고종은 왕조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어진 전통을 활용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대내외에 가시화하기 위해 사진, 유화와 같은 새로운 시각매체도 적극 활용하려 했다.
제의적 공간을 나와 복제 이미지로 유포된 고종의 초상은 때로는 충군애국의 상징으로, 때로는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멸망해가는 조선 왕조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로 읽히기도 했으며, 조선 관광용 상품 사진으로 제작되어 판매되기도 했다.
그러나 고종의 편에서 보면 이때 제작한 유화 초상화나 공식 사진은 숨겨진 어진의 전통적 개념을 깨고 대외적으로 제시한 조선 왕 또는 황제의 시각화였다. 고종의 초상은 대한제국기 전후 서구 열강과 제국 일본이 조선을 사이에 두고 벌였던 힘의 경합이 단순히 정치적 층위뿐 아니라 시각 이미지의 재현의 층위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종의 초상 만들기는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가 어떻게 제작되었는지를 좀더 내부적인 맥락에서 살펴보는 작업은 제국이 부여한 타자에의 시선들에 균열을 가하고 그 틈새로 왕의 초상과 사진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의 시선을 끌어내는 일이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권행가 지음 | 2015년 11월 30일 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