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깊었던 문구

글쓴이 박의식 | 작성일 2010.11.17 | 목록
이종묵 지음
발행일 2009년 2월 10일 | 면수 392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5,000원

[지금 조선의 시를 쓰다] 이후에 오랫만에 읽어 본 우리
한시에 대한 책.
지극히 말촉적이고, 즉각적인 반응들이 요구하는 요즘의
문화 시대에 우리의 한시들은 그 깊이가 너무도 깊어…
요즘 사람들 중에 과연 몇명이나 이런 한시를 이해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책밖에는 알수없는 이 위대한 문화콘텐츠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너무 멋진 한시와 글이 많지만 간략하게 옮겨봅니다.

인상 깊은 문구

– 18세기의 시인 홍세태는 [설초시집서]에서 시는 하나의 작은
기술이지만 명예와 이익을 벗어나 마음에 얽매임이 없는 자가
아니면 할수 없다고 말했다.

– 마음이 가난한 시인의 눈에는 피지 않은 꽃만 보인다.

– 가난은 시를 아름답게 만든다.
당대에는 시로 인해 가난하게 살았지만, 죽고 나서는 가난이
만든 아름다운 시 때문에 후세에 아름다운 이름이 전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시인 시인을 곤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을 영화롭게도 만든다.

– 새벽녘 등불이 지워진 화장을 비추는데
이별을 말하고자 하니 애간장이 끊어지네.
지는 달빛 빈 뜰에 문을 밀고 나서니
살구꽃 성긴 그림자 옷에 가득하네.

– 정포, [양주 객관의 벽에 쓰다 / 동문선 권21]

이 작품은 이 모든 것을 드러내어 말하지 않았다.
[아리랑]처럼 저주를 말하지 않았고, [진달래]처럼 눈물을 감추고
잘 가라고 위선을 꽃을 뿌리지도 않았다.
시는 말을 아끼고 사랑도 말을 아끼는 법이기 때문이다.

– 하늘에 오르던 그 옛일을 돌은 알겠지
고도는 상전벽해 되었건만 사물은 그대로니.
성 아래 온 강 가득 달빛 밝은 밤인데
어찌하여 기린마는 다시 오지 않는가?

– 신광수 [관서악 / 석북집 권 10]

– 나는 십만 군사를 멀리 몰아가서
가을바람에 구련성에 웅장히 주둔하리.
호령하여 교만한 오랑캐를 짓밝고
춤추고 노래하며 돌아와 옥경에 절하리라.

-볼모로 잡혀 심양에서 대륙을 체험한 효종이라야.

이로써 본다면 호방한 기상은 돈과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방의 체험에서 형성된 것이라 할수있다.
오히려 부귀와 사치는 타고난 호방한 기상을 손상시킨다.

– 철령의 높은 멧부리는 칼날과도 같은데
동쪽으로 바다와 하늘은 아득하기만 하네.
가을바람은 유독 귀밑머리에만 붙어오는데
말을 몰고 오늘 아침 북녘 변방에 왔노라.

– 정도전, [철령에서 / 삼봉집 권2]

– ‘제2의 나’를 만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상우천고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당대에 진정한 벗을 만날 수
없으니,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마음에 맞는 벗을 구한다는 말이다.

– 어린 종이 창틈으로 와서는
소리 죽여 하는 말 “아가씨,
친정이 사무치게 그립다면
내일 가마에 보내라 할까요?

– 이옥, [아조 / 이언]

– 박지원은 이덕무의 시집 [영처고]의 서문에 붙인 글에서 조선의 자연과 언어가 중국과 다르므로 중국을 본뜰수록 뜻은 더욱
낮아지고 체는 더욱 거짓이 된다고 하고, 이덕무가 조선 사람으로 조선의 인물과 풍속, 산천, 초목, 조수를 시에 담았으므로,
[시경]의 국풍에 실려 있는 폐풍이나 회풍에 비견하여 그의 시를
조선풍이라 불러도 될 것이라 했다.
정약용은 여기서 더 나아가 스스로 조선 시를 쓰겠노라 선언했다.

– 월하노인을 데리고 명부에 하소연 하여
내세에는 부부가 처지를 바꾸어서
내가 죽고 자네는 천리 밖에 살아남아
자네로 하여금 나의 이 슬픔과 알게 하리라.

– 김정희[유배지에서 처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 완당집 권10]

‘시언지’, 곧 시는 뜻을 말한다는 정신을 따라 떠오르는 생각을
다듬어 개성을 발휘하는 것.
이것이 우리 한시의 정신이다.
우리 한시의 나아갈 바가 ‘음향’이 아닌 ‘정신’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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