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운명

글쓴이 이경아 | 작성일 2004.12.27 | 목록
서경식 지음 | 이목 옮김
발행일 2004년 9월 13일 | 면수 256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0,000원

나는 이 책을 화장실에서 읽었다. 그럴만한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어느 날 아침에 얇고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걸린 게 이 책이었고, 생각 의외로 짧은 이야기들은 굳이 집중이 필요치 않아, 아침마다 볼 일을 보며 읽기를 마쳤다. 어찌 보면 사사로운 이야기임이 분명한 저자의 성장기에 등장하는 이런 저런 책들을 훑어 가노라면 ‘퍽이나 운이 좋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건 몰라도 읽을거리만은 풍요로운 환경이었음이다. 위로 있는 형들의 영향도 지대해서 서 경식의 독서편력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거기에 적당한 감성과 섬세함을 더하여 정체성을 두고 고민하는 모습은 아름답기조차 하다. 그는 불운을 색칠하고 절망을 다듬이질 하여,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글로써, 타인의 잠든 오감을 흔들어 깨우는가 하면, 가슴을 온통 절절한 애국심으로 들끓게 한다. 그의 사색과 번뇌 앞에서 목이 메이 지 않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어린아이의 눈물에 관해 저자가 인용한, <하늘을 나는 교실>이란 책을 내가 읽은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그가 기억하는 여비가 없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소년 이야기는 나 역시 제일로 슬퍼했던 이야기다. 같은 책을 읽으며 유사한 상념에 젖었다는 발견 아닌 발견이 새삼 기쁜 것은 순전히 저자에 대한 애정 때문이리라. 그가 읽었던 책과 그가 쓴 어떤 책이 인생의 굽이굽이에서 가쁘게 숨을 내쉬던 순간마다, 내게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까. 그는, 잊고 있던 오래된 책에 대한 애정을 새록새록 돋아나게 한다. 낡아서 누렇게 색이 바랜 옛 책을 다시 꺼내 먼지를 닦아내게 만든다. 그 책의 줄거리 뿐 아니라, 그 책을 사게 된 경위며 시절을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책의 운명은 그 주인과 함께 다한다는 진리에 설레는 오늘, 나는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

7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