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보다 슬픈 이름, 가족

글쓴이 이경아 | 작성일 2004.12.27 | 목록
서경식 지음 | 이목 옮김
발행일 2004년 9월 13일 | 면수 256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0,000원

2004-12-04 22:37

나는 서경식의 글을 좋아한다. 그의 가족사도, 그 가족사를 부정하지 않는 그의 태도도 좋다. 정말 많은 것을 머리에 담고 너무 많은 일을 경험하고 넘치도록 생각하고 수없이 말을 고른 글을 쓸 줄 아는 사람. 현재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를 들여다 보아야 한다. 역사 뿐 아니라 가족사도 마찬가지다. 서경식은 가족사와 자신의 내밀한 마음의 역사를, 자신이 성장했던 배경과 그 배경에 항상 함께했던 책들을 빌어 담담하게 기술한다.인상깊은구절들/초등학교 시절 내가 가장 싫어했던 것은 급식비라든지 수학 여행 적립금 따위를 내는 일이었다. 이 외에도 간유나 구충제를 신청하는 일이라든가, 걸레를 만들기 위해 천 조각을 학교에 갖고 가는 일도 좋아하지 않았다. 내 어머니는 당신 자녀들의 학업과 관련된 그 잗다란 준비물들을 일일이 빠짐없이 신경 써서 챙겨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집이 극도로 가난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따금 급식비마저 제때 납부할 수 없었던 건 사실이다. 게다가 어머니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바쁘셨다. 하지만 진정한 속내를 이야기하자면, 어머니는 글눈이 어두워 학부형들을 위한 학교의 통지서나 공지사항 등을 읽으실 수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어머니는 당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숨기시려고 내 앞에서 오랫동안 글 읽는 시늉을 하며 지내셨다. 급식비를 제출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봉착하면,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아차, 깜빡했다!”하며 큰 소리를 내는 것이 특기였다. 그러나 그것도 두 번 세 번 거듭되면 곧 들통이 나기 마련이었다. 혹시라도 이마무라라는 사람한테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 “아빠 지금 집에 안 계세요. 집에 아무도 없어요”라고 대답하도록 우리는 어머니께 단단히 교육을 받았다. ‘이마무라’는 금융업자의 이름인데 어느 해던가 섣달그믐에는 음울한 표정의 이마무라 씨가 방 안까지 들이닥쳐 우리 형제들과 ‘가요청백전’을 시청하며 내내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모두들 “어린 시절은 참으로 좋았다. 가능한 일이라면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나 역시 그 같은 마음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지난 시간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하나하나 꼼꼼히 되짚어보면, 그리움이나 즐거움과 마찬가지로 어린아이 나름의 슬픔과 괴로움이 마음속 저편에서 되살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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