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인간에 이르는 길을 선택할 자유

글쓴이 한설미 | 작성일 2007.2.2 | 목록
프리모 레비 지음 | 이현경 옮김
발행일 2007년 1월 12일 | 면수 340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2,000원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 오로지 죽음의 결말 외에 다른 길은 없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인간을 죽이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부당한 행동을 하는 것도, 부당함을 당하는 것도 인간이다. 강제 수용소에 잡혀온 2만 명가량의 사람들과 광기에 사로잡힌 독일군. 죽음의 결말만을 기다리고 있는 아우슈비츠에서는 오직 피억압자와 억압자, 이렇게 단 두 부류로만 나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인간이 평등하다는 신화가 얼마나 공허한지, 감히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사치인지, 이유 없는 감옥에선 오로지 지옥의 기로에 선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만이 메아리쳐 들려올 뿐이다.

역사를 공부하고 싶었다. 아니, 부당함의 역사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독일인의 치부를 건드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지옥과도 같았던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의 증언을 토대로 다시 한 번 반세기 전, 피의 전쟁터 그 살육의 현장을 바라본다. 반드시 존재했던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목소리가 새삼 건조하게 느껴졌다. 광기에 사로잡힌 히틀러의 나치즘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냉정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그의 초연함에서 분노보다 더욱 무서운 증오의 순화를 경험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인간이 재생할 수 있는 모든 기본 권리마저 박탈당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제 3 수용소에서의 1년. 수용소의 사람들은 의식주는 고사하고 짐승 이하의 취급을 당하며 자살 할 의지마저 꺾이는 삶의 최 하단 층의 피 끓는 고통의 시간들을 겪는다. 이 곳에서는 이유가 없다. 인간이 인간에게 행사하는 모든 부당함뿐인 불공평한 법칙에 대한 이유 따윈 없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서도 안 되고, 알아서도 안 된다. 그저 구정물 통 속으로 집어넣어 군화를 지근지근 밟아대는 타인으로부터의 모욕과 가학을 견디거나, 스스로 죽어가는 길 밖에는 방법이 없다. 이것이 인간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중한 물음의 결과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누를 수 있는 자유의 보장에 따른 귀결점이다. 처음부터 자유가 없었던 사람은 스스로 자유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권력에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용소로 보내진 수많은 사람들은 비이성적인 파시즘을 결단코 이해하지 못했다. 저자의 말대로 이해라는 단어 자체에 용서와 관용, 혹은 수용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느냐, 답은 절대 ‘노동’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비이성적 광기와 가학만이 가득한 194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치열한 삶이 가장 오래된 물음인 ‘인간’ 자체의 도덕에 대한 상을 적절하게 제시해 주는 듯 하다.

지금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기록은 온갖 통계자료와 수치로 그 끔찍함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당시를, 그 날을 몸소 겪었던 이들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몇 몇 영화나 소설, 혹은 문헌이나 자서전에서 폭로 혹은 증언 되고 있는 사실로서의 기록들은 여전히 유효하게, 잔인한 부분들을 더욱 더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의식이 남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고통스런 운명의 가혹함을 직접 저술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 된다. 개인의 증오와 분노의 차원을 넘어, 인간이 인간에게 가지는 인간 자체에 대한 악의 폭로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 된다. 앞으로 우리에게 전쟁은 없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지구촌 모든 이들의 사고의 방식이 단일하게 발생하고 있는 전쟁터인데…. 언제 닥칠지 모를 악의 순환과 부조리한 인간 권력 상징의 두려움을 이처럼 강하게 느껴본 적이 없는 듯 하다. 국가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참으로 어려운 문제들이다. 아직도 나는 이 국가상들에 대한 진정한 이념을 깨닫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인간을 가장 큰 두려움으로 몰고 가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을 죽이는 것은 바로 인간이며, 부당한 행동을 하는 것도, 부당함을 당하는 것도 오직 인간이라는 것을.

[인상적인 구절]
낯선 외국어가 모든 사람들의 정신의 밑바닥으로 돌덩이처럼 떨어진다. 기상. 따뜻한 담요가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경계, 잠이라는 튼튼하지 못한 갑옷, 고통스럽기도 한 밤으로의 탈출, 이 모든 것이 산산조각난다. 우리는 다시 무자비하게 잠에서 깨어나 벌거벗고 연약한 상태에서 잔인하게 모욕에 노출된다. 이성적으로는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다른 날과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너무나 춥고 너무나 배고프고 너무나 힘이 들어 그 끝은 우리와 더 멀어진다. 그러므로 회색빛 빵 한 덩이에 우리의 관심과 욕망을 집중시키는 것이 더 낫다. 빵은 작지만 한 시간 후면 틀림없이 우리 것이 된다. 그것을 집어삼키기 전까지 5분 동안 그것은 이곳에서 우리가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변할 수 있다. -94

역사와 삶 속에서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며 못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마가복음 4장 25절」- 라는 잔인한 법칙을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간이 홀로 존재하며 삶을 위한 투쟁이 원초적인 메커니즘으로 축소되어버리는 수용소에서, 이 불공평한 법칙은 공공연히 효력을 발휘하며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다. -134

이해하려 애쓰지 마라, 미래를 상상하지 마라, 모든 게 어떻게 언제 끝나게 될지 생각하며 괴로워하지 마라,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지도, 스스로 자문하지 말라. -179

무기력하고 힘없고 헐벗은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우리 시대의 인간들이 가장 정밀한 도구를 이용해 서로의 죽음을 구하고 있었다. 그들이 손가락만 한번 움직이면 수용소 전체가 파괴되고 수천 명의 사람들 전멸시킬 수 있었다. 반면에 우리의 힘과 의지를 모두 다 합쳐도 우리들 중 한 사람의 생명을 단 1분도 연장할 수 없었다. -263 –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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