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바디스(Quo Vadis?), 팔레스타인으로 가소서!

글쓴이 이경아 | 작성일 2005.3.2 | 목록
분류 절판도서
발행일 2004년 11월 26일 | 면수 472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8,000원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하나의 의무와 책임을 느꼈다. 감당해낼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심연 속에 감추어진 진실에 짓눌린 무지한 개인인 내가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자조와 푸념을 떠나서라도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는 비인류적인 역사에 대해 알려고 노력한다는 마음만은 져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승리자의 논리로 쓰여지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서 희생당하고 있는 수많은 약자들이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희생자들이, 강한 군사력과 엄청난 자본의 힘으로 진실을 왜곡당한 채 무지와 비난과 곤핍 속에서 죽어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몰랐다.”라는 말은, 역사 앞에서 변명이 될 수 없다.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가해자이며 죄인이다. 막연한 비난과 격정에 휘말린 논리만큼 한심스러운 것은 없다. 팔레스타인을 궁휼히 여기고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쉬운 일에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 논리적으로 이 문제에 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찰나 좋은 기회를 얻어 이 책을 얻게 되어 무거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세계 각지를 떠돌던 유대인들은 수천 년을 유랑하며 헤매던 역사를 떨치고 민족 전체의 숙원이던, 성지로 돌아가 나라를 세우게 되었는가 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 대한 왜곡, 그 왜곡에 언론과 시오니스트들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얽혀 있는가에 대한 치밀한 논증으로 이 책은 이루어졌다. 원래 터를 잡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어떻게 강제로 밀어내고 유대인들의 집단 거주지를 만들어 확장하고 나아가 이스라엘이라는 유대인만으로 이루어진 나라를 이루어내고 점차 욕심을 내어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이 아닌 존재들을 깡그리 말살하고 제거하기 위해 어떤 과정과 방법이 동원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고증으로 이 책은 구성되었다.

이 글을 쓴 작가 노만 핀켈슈타인는 “나의 사랑하는 부모님, 바르샤바 게토, 마이다네크 수용자의 생존자 마릴라 후시트 핀켈슈타인, 바르샤바 게토,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 자카리아스 핀켈슈타인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나는 그들이 당한 고통을 잊지도 용서하지도 않을 것입니다.”라는 헌사로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건국 아래 어떠한 추악한 힘과 논리가 감추어져 있는지를 치열한 열정과 명명백백하고 치밀한 논증으로 풀어내고 있다. 19세기 후반 유대인이 압도적 다수를 이루는 국가를 팔레스타인에 건설하기 위해 시오니스트들은 그들의 오랜 고향인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욕망을 현실로 옮기기 시작한다. 영국의 벨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자리를 잡은 시오니즘에게 가장 걸림돌이 되는 존재들은 이미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었던 토착민들, 즉 그네들 종교의 이단이자 패역자들, 무슬림과 아랍인들이었다. 시오니스트들은 역사가 친절하고 자세하고 반복적으로 알려주는 대로, 소수의 이주민들이 다수의 토착민들을 다스리는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헤이트 같은 – 나라를 만들거나 세계 각지를 떠돌고 있는 유대인들을 불러들여 유대인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공간 – ‘나라’의 개념이겠다. -을 만들기 위해 서서히 그들의 계획을 실행한다. 방법은 단순했다. 모두 제거하지 못한다면 강제로 내쫓을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다. 성경에서 증거하는 대로 유대인들의 위대한 믿음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할 수 없는 일을 현실로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그 거대한 죄악은 철저히 은폐되거나 왜곡되어 거대한 기적이나 놀라운 승리로 포장되어 널리 칭송되고 있다. 1948년 시오니즘 운동은 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혁명적 시기”를 이용해 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토착 인구의 80%)를 추방하고 유대인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영토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물론 이때의 과정은 미국이 토착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서부에서 몰아낸 경험이 있는 미국의 도움 아래 철저히 지지받고 옹호받았다. 6월 전쟁을 기회로 삼아 시오니즘은 팔레스타인 전체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UN의 중제와 4차 제네바협정을 무시한 이스라엘은 국제적 협의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존립시키고 팔레스타인의 모든 영토를 자국의 영토로 확정하기 위해 힘쓴다. 10월 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은 두 개의 자치구에 갇히게 되었으며, 이스라엘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그네들이 당했던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을 외교적으로 교묘하게 악용해서 국제적인 논란을 무마시켰다. – 노만 핀켈슈타인의 또 다른 저서 <홀로코스트 산업>을 읽어보시면 더욱 명확히 이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후 계속되는 UN의 모든 결의안과 국제적인 협약과 회의에서 미국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한다. 홀로코스트 산업으로 축적한 막대한 자본과 시오니스트들의 자본력은 계속해서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을 불러들였고 유대인 정착지가 팽창함에 따라 팔레스타인인들은 토막난 영토 안에서 ‘전체 인구의 1/3이 실직 상태, 인구의 절반이 일당 2달러 이하의 돈으로 생계를 유지, 이스라엘의 식품 수송 제한령으로 말미암아 5세 이하 어린이 1/5가 영양실조’ 상태 – 유대인들이 물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유대인 한 명의 물 사용량이 팔레스타인인 300명의 사용량과 맞먹는다. 6억 입방미터의 물 중에서 이스라엘 한 국가가 5억 입방미터의 물을 소비하고 있다. – 인 비참한 지경 속에서 생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린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국제 언론은 철저히 무시하거나 왜곡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저항이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왜곡된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과장해서 떠벌리면서 그들의 행동을 테러라고 비난하면서 ‘얼씨구나, 좋은 꼬투리가 생겼구나!’ 팔레스타인 지역에 가차 없는 응징과 몇 배의 무차별 보복공격을 가한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계속해서 압도적인 군사력과 잔인한 경제 제제로 팔레스타인을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맨손으로 저항하는 민간인들을 무시하고 불도저로 집을 밀어버리고 돌을 던지며 저항하는 어린이들과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웃으면서 정확한 조준사격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감추어진 진실의 사례는 얼마든지 있지만 신기하게도 국제 언론은 이런 사실에 대해서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지 않고 있다. – 진실이 아니어도 좋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이라도 전달하는 것만이라도 간절히 바랄 뿐이다. –

노만 핀켈슈타인의 방대한 양의 자료 검토와 명확한 인용과 자료 제시를 읽어나가는 것만으로도 경악에 가까운 존경을 보낼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이러한 무수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건국에 얼마나 많은 왜곡과 죽음과 비극이 깃들어 있는가 하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지만 이후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논리를 포장하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얼마나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계획적으로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해왔는가 하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조안 피터스의 <태고적부터>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기 이전부터 팔레스타인에는 원래 토착 원주민이 없었던 상태였고 20세기가 되면서부터 갑작스럽게 70만이 넘는 인구가 갑작스럽게 유입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당시 아랍인 인구 전체의 세 배가 넘는, 황당한 숫자이다. 노만 핀켈슈타인은 조안 피터스의 이 책이 얼마나 황당하고 기발한 상상력과 의거한 아전인수의 책이라는 것을 조목조목 밝혀내 그야말로 이 책은 말 그대로 개 같은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또한 베니 모리스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을 떠나게 된 것은 이스라엘 때문이 아니고 전쟁 때문에 발생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해괴망측한 어불성설을 늘어놓고 있는데 이 또한 핀켈슈타인은 치밀한 논증과 증명으로 진실을 밝혀내고 있다. 아니타 샤피라는 원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차지하기 이전에 그 땅은 아무도 살지 않던 황무지나 다름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세우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미국을 건국한 전력이 있는 개쉐이들이 이스라엘의 편에 선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그들이 믿는 신이시여, 그들에게 제발 축복을 내리소서! – 이 외에도 이스라엘은 오슬로 협정을 철저히 무시하고 아직까지도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구성하는 안을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자신들의 숙원을 거의 완벽하게 성취했다고 보는 게 옭다. 현실은, 아직까지도 진행중이다. 탱크와 전투기로 무장한 다윗과 맨주먹으로 저항하고 있는 골리앗의 싸움이다. 몸뚱아리를 다 빼앗기고 거의 죽어가는 몸으로 골리앗은 아직도 자신들의 땅에서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단 한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생존하지 않을 순간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노력할 것임이 뻔한 상황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정말로 역사는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비참하고 처절하게 학대받고 고난 받아온 유대인들이 마침내 오랜 방황을 끝내고 자신들만을 나라를 세우자마자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돌변한 이 아이러니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 책의 전체 내용을 꼼꼼 읽어보기란 쉽지 않다. 치밀한 논증의 전개 과정은 좀 전문적인 내용이기도 하거니와 일반적인 독자는 그 논리에 대한 정보를 다 알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반독자라면 이 책의 서문과 1장, 연표만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의 이미지와 현실>의 진실을 쉽게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마라!] 강제 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유대인들이 한 말이 이제는 뒤집힌 역사의 시간에서 거꾸로 자신들을 찌르는 비수가 된 이 상황을 훗날 역사는 무엇이라 기록하고 증거 할 것인지 부릅뜬 눈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한 발 더 나가는 실천의지를 가진 분들에게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귀한 사료의 책이라는 걸 힘주어 말하고 싶다. 팔레스타인 영토의 회복과 그들의 평화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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