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전 – 김규항 지음 / 돌베개

글쓴이 조통 | 작성일 2015.8.21 | 목록
김규항 지음
발행일 2009년 4월 13일 | 면수 268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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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 – 김규항 지음 / 돌베개

2015년 여름휴가 특선으로 편하게 잡은 4권 중 마지막으로 선택하고 마지막으로 읽은 책.

예수에 대한 일대기를 혹은 성경에 나온 구절과 실제를 따라가보는 행보와 관련한 책으로 알고 들었다가, 오랜만에 열씸히 밑줄 치면서 두세 번 읽어가면서 진지하게 읽은 책.

머리말에서 저자는 작금의 가장 슬픈 현실인 ‘우리의 영혼이 파괴’되고 있는 슬픔에 대해서 말하고 들어간다. 사람들이 꿈꾸고 생각하려 하지 않고 있는 현실, 모든 진리와 이상이 돈으로 집중되는 진리의 흐름, 일부 인텔리는 그들의 상품성을 관리하며 제 자식이 단지 더 경쟁력이 있는 상품으로 만드느라 여념이 없는 지금….

‘이건 아닌데’라고 되뇌며 조용히 실마리를 모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책이 바로 그들을 위한 책이라 말한다.

올바르게 살기 위해 고통과 헌신을 감수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보고 오히려 더 삶을 즐기고 더 많이 행복하라고 말한다고 보며 예수의 별명은 ‘먹고 마시길 즐기는 자’였다고 한다.

머리글이 워낙 이 책을 정확하게 꿰뚫는 드라이한 한 문단이기에 문단을 통째로 끌어오는 것이 정답인듯해서 끌어온다.

처음에 나는 이 책을 통해 ‘예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려 했다. 예수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인물이자 가장 많은 오해에 휩싸인 인물이다. 지배계급이 일찌감치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이상주의자를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만들어 버린 후. 사람들은 그 예수를 각자의 세속적 욕망을 신에게 청탁하는 매우 유능한 중계인쯤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오해의 일부라도 걷어 내고 싶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지필을 위한 기초 작업으로 내 모든 종교적 지식과 선입견을 걷어 내고 복음서 읽기와 묵상을 거듭하면서, 나는 놀랍게도 2,000년 전 예수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에 대해 이미 말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본문으로 "200주년 신약성서"를 선택하여 예수의 삶을 교리 속에 묻어버린 교회에 반하여 인간 예수의 삶을 지금의 현실에 맞추어 되살려 인간 예수의 삶이 없었다면 그리스도 예수도 기독교도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잊지 말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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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아니라 ‘하느님’이라고 표기한 건 그게 보편적인 표기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 있는 주요한 기독교 교단들, 즉 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 가운데 ‘하나님’을 사용하는 곳은 개신교뿐이다. 나머진 다 ‘하느님’이라 한다. 네 곳 가운데 세 곳이 사용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건 보편적인 태도가 틀림없다.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개신교의 일부 교회가 가진 배타적 태도 때문일 것이다.

–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던 예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란 이방인의 압제를 물리치고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 다윗 왕과 같은 하느님의 신정을 이루는 ‘정치적 구원자’를 뜻했다. 그러나 예수가 죽고 예수의 운동이 기독교라는 종교로 발전하고 교리가 정립되어 가면서 그리스도라는 말은 정치적 구원자보다는 ‘영혼의 구원자’의 뜻으로 변화한다.

– 하느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지켜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들을 매우 꼼꼼하게 명령했는데, 그 명령을 잘 따르면 기뻐하고 상을 주었지만 어기면 크게 화를 내며 벌을 주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배치되는 사람들이나 사회에 대해선 매우 차갑고 잔혹했다. 온 인류의 보편적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유일한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에 젖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배타적 민족 신으로서 하느님이었던 셈이다.

– 예수를 포함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유대교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 즉 자유롭게 선택할 수도 갖지 않을 수도 있으며 크든 작든 단지 삶의 일부를 차지할 뿐인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들에게 유대교는 일개 종교가 아니라 유일한 가치관이자 윤리이자 법이자 정치이념인 ‘전적인 정신 체계’였다. 그들에게 ‘유대교’는 없었다. 유대교라는 말은 그들의 외부에서 그들의 고유한 정신 체계를 가리키는 말일뿐이다.

– 그리고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넣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그 가죽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가죽 부대도 못 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넣는 법입니다.

– 사람은 품위 있는 사람과 품위 없는 사람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다.

–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예수의 제자는 열둘은 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열둘’은 예수 제자의 실제 수를 표현하는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숫자다. 구약성서에 적힌 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열두 지파로 이루어진 나라라고 믿었다. 예수가 열두 제자를 뽑아 임무와 권한을 주었다는 말은 예수가 온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하는 조직적이고 본격적인 하느님 나라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 예수의 변혁은 당연히 정치적인 변혁을 포함했다. 그것을 궁극의 목표로 하지 않았을 뿐

– 사회적 비판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악한 세력이 아니라 ‘그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주요한 세력’에 집중되어야 한다.

– 대개 개신교는 중세 가톨릭의 타락에 대항한 종교개혁으로 만들어진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사실이지만 종교개혁의 좀 더 중요한 본질은 십자군 이후 봉건사회가 점차 무너지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왕과 귀족들을 제치고 서서히 서양 세계의 새로운 주인으로 나타난 도시 상인들, 즉 부르주아들이 왕과 귀족의 교회인 가톨릭교회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이해와 정체성에 맞는 교회를 세운 사건이었다. 말하자면 종교개혁은 자본주의 사회 탄생의 서막이다.

– 예수에 관한 가장 흔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예수가 무조건적인 용서를 설파했다는 것이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갖다 대라는 그의 말(마태 5:39)은 불의와 폭력에 대한 무기력한 순응을 강요하는 데 활용되어 온 가장 유명한 경구다. 그러나 오늘 좀 더 섬세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의 이 경구가 오히려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아챈다. 사람은 대개 오른손잡이다. 오른손은 ‘바른손’이며 고대사회에선 더욱 그랬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뺨을 때린다는 건 오른손으로 상대의 왼뺨을 때리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오른뺨을 때리면"이라고 했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으로 때렸다는 말이다. 손등으로 뺨을 때리는 행위는 당시 유다 사회에서 하찮은 상대를 모욕할 때 사용되곤 했다. 그렇게 모욕당한 사람에게 예수는 ‘왼뺨도 갖다 대라’고 말한다. ‘나는 너와 다름없는 존엄한 인간이다. 자, 다시 제대로 때려라’하고 조용히 외치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용서하고 순응하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단호하게 저항하라, 불복종을 선언하라는 것이다.

– 우리는 흔히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의 순서를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되 죄는 분명히 미워하라.’ 우리는 끝내 용서하되, 먼저 분명히 분노해야 한다. 진정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 용서할 줄도 모르며, 진저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 분노할 줄 모른다. 분노와 용서는 실은 하나다.

– 역사 속에서 ‘정교분리 원칙’이 나온 배경은 중세 시대에 교회가 스스로 지배세력의 일부가 되어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했던 타락의 역사 때문이다. 그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교회 스스로의 반성에서 정교분리 원칙이 나온 것이다. 말하자면 정교분리 원칙은 교회가 무작정 정치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교회가 지배세력의 일부가 되거나 야합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다.

– 유대교의 헌금은 종교의 범주를 넘어선 것, ‘사회적 기부’에 해당한다고 보는 게 좀 더 정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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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종교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그 교리의 참뜻을 잘 이해하고 해석하여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지 하드웨어적인 규범과 제약만을 따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

종교적 수행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살아가면서 참된 선을 수행하는 것이 더 중요할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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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 - 김규항 지음 / 돌베개] 영혼이 파괴되고, 꿈과 상상력이 사라지고, 돈이 모든 삶의 지표가 된 지금,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예수’가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라 보고 ‘200주년 신약성서’ 강독 내용을 모아서 엮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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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간만에 책이 색연필로 도배가 되는 책을 이번 휴가 맨 마지막날 만났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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