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를 새로 읽는다 – 아미노 요시히코 지음 / 임경택 옮김 / 돌베개

글쓴이 조통 | 작성일 2016.7.1 | 목록
분류 절판도서
발행일 2015년 10월 26일 | 면수 394쪽 | 판형 신국판 152x225mm | 장정 소프트커버 | 가격 18,000원

부제 : 상식을 뒤집는 일본사 특강.

조선사를 공부하면서 반드시 병행해서 공부해야 할 인근 국가 역사는 중국과 일본.

통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나로서는 그저 몇 가지 역사 속의 팩트가 궁금한 게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일본의 문자는 한자를 근간으로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왜 아직껏 병존하는가?

그리고 임진왜란을 전후한 일본의 사회구조는 어떠했던 것일까?(단순히 어느날 갑자기 도요토미가 전국시대 혼란기를 통일하고 지배권을 강화와 안정화를 위해 대륙으로 눈을 돌렸다가 아닌)

또 일본의 해상무역과 상업은 어떻게 발전해서 조선을 넘어 명을 정벌하고 대륙을 향하는 야욕을 길렀고, 속칭 대동아전쟁이라고 하는 동북아시아를 들었다 놓는 것도 모자라서 미국까지 건드려서 결국 패전에 이르게 되는가 등등

이런 몇가지 궁금증에 대해 명쾌하게 답을 주는 세계사 학자를 아직 내 주위에서 만나지 못했기에, 언젠가 누군가 권위 있는 동북아시아 역사학자를 만나면 꼭 물어볼 작정이었다.

그렇게 생각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중 우연하게 일본이 천황과 무사 그리고 농민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역사라는 사실에 대해서 여러가지 형태의 다양한 일본의 단순하게 쓰인 겉 포장을 벗겨낸 내면을 들여다 본 책을 만나 일본의 내부에 있던, 과거에 감춰져있던 과거로 잠시 다녀왔다.

무라와 마치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의외로 높았던 일본 평민들의 식자율, 가타카나와 히라가나는 누구에게 어떻게 상용되었나, 종교인들의 상업관여, 고대 일본의 신분구조, 여성을 대하는 고대 일본인의 자세와 성풍속도, 여성의 사회첨여와 지위, 일본 국호와 권력구조, 상업의 발달과 지배구조의 영향 등에 대해서 다룬다.

부제에는 상식을 뒤집는 일본사 특강이라고 되어 있으나…

천황과 무사 그리고 농민의 조직구도 등에 대한 일말의 지식도 없던 내게는 상식을 뒤엎기 보다는 재미난 일본 속살을 들여다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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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문자 보급률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높다.에도 시대 후기의 식자율이 50~60%에 이르렀다고 하는 이도 있는데, 평균 40% 정도는 문자를 알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1874~1875년경 일본에 머문 한 러시아인의 글에 인력거꾼, 마부, 찻집 아가씨 들이 틈만 나면 품속에서 작은 책자를 꺼내서 본다.

– 현재 남아 있는 문서 세계로 한정해 볼 때 히라가나, 가타가나를 혼용해서 작성한 문서가 등장하는 건 10세기경부터.

– 문자의 보급은 오로지 히라가나가 보급되는 형태, 소수파 가타가나는 구두로 이야기한 것을 표현하는 경우에 쓰임.

– 히라가나는 주로 여성의 세계에서부터 쓰이기 시작. 여성이 쓰는 편지글은 기본적으로 히라가나로 쓰였고, 남성이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도 대부분 히라가나. 여성 문자로서 독특한 의미를 가짐.

– 기본적으로 공적 문서는 한자.

– 남성 세계, 공적 세계의 문서에 한자를 사용하는 건 이처럼 아주 나중까지도 일관되는 현상. 남성이 히라가나를 사용하는 건 당연히 사적인 편지에서 비롯, 그리하여 헤이안 시대 말엽부터는 양도증서에 히라가나가 널리 사용됨. 양도증서는 공적 기관은 물론 당사자 주변의, 일정한 범위의 사회가 인지해주지 않는 한 양도 행위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

– 문자 보급에 관해 또 하나 이야기해 두어야 할 점은 그 주력이 가타가나가 아니라 히라가나였다는 사실. 구술 세계와 밀착된 문자인 가타가나는 ‘서書’가 안 되는 문자. 그러나 히라가나는 처음부터 읽고 그리고 쓰는 문자로서의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율령국가로의 이전은 모든 행정을 문서로 함. 이 문서화는 관리가 되기 위해 반드시 공부해야 할 위로부터의 강제성과 아래로부터 문자를 익히려는 자발성을 불러옴.

– 메이지시대 법률과 군대용어에는 오로지 가타가나만 사용, 초등 교육에서도 맨 처음 가타가나를 가르침. 그러나 일상 서민은 히라가나가 지배적. 에도 시대 이후에도 문학은 여전히 히라가나 혼용체였고, 유학자는 가타가나를 사용. 패전 뒤에는 초등 교육에서 히라가나를 맨 먼저 가르침.

– 언뜻 보기엔 좋은 일만 한 것처럼 보이는 율령국가이지만 호적에 모든 사람을 기재한 것은 무거운 과역을 부과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대문이 인민의 유랑과 도망 같은 동요가 일어난 것이므로 히데인을 세운 것 또한 당연한 노력. 하여간 나라 시대에 국가가 이러한 기획을 갖고 움직였다는 것은 틀림 없다.

– 외국인(프로이스 16세기 중반)의 눈에 비친 일본 여인은 이렇게도 묘사된다.
“일본의 여인은 처녀의 순결을 조금도 중요시하지 않는다. 그것을 잃더라도 명예가 실추되지 않을 뿐 아니라 결혼도 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재산을 부부가 공유하지만 일본에서는 각자가 자신의 몫을 소유한다. 때로는 아내가 남편에게 고리로 돈을 빌려준다”같은 서술도 있고, “일본에서는 딸들과 아내들이 부모와 남편에게 알리지 않거나 양해를 구하지 않고도 하루고 며칠이고 혼자서 좋아하는 곳으로 여행하거나 그러할 자유를 갖고 있다”, “일본에서 낙태는 지극히 보통 일이어서 20회나 낙태를 한 여성도 있다”, “일본에서 비구니 사원은 거의 매춘부 동네가 된다”

– 다카기에 따르면 메이지 시대 초기까지도 이혼율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그 후 감소 경향. 다만 막부의 법제상으로 이혼장, 즉 미쿠다리한은 남편이 아내에게 주는 형태만 법적으로 인정이 되었기에 아내가 쓴 이혼장은 절대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문서로만 보면 남편이 이혼의 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남편에게 이혼장을 쓸 의무가 있다고 하는 편이 차라리 맞을 것. 그것이 없으면 남편도 아내도 재혼을 할 수 없었다.

– 근친혼에 대해 느슨한 생각은 옛날부터 일본 사회의 특징 중 하나였습니다. 고대 문헌을 보면 어머니가 같은 남매간의 혼인은 금기시되었지만 이 경우도 연애감정이 생겨나 괴로워했다는 예가 있으며 실제로 몇 차례의 혼인 사례가 있다. 삼촌과 조카딸, 고모와 조카의 결혼도 중세까지는 많이 보인다. 천황가나 귀족 세계의 사례를 보면 가마쿠라 시대 말기까지 지속되는 근친혼의 이 느슨함에 약간 놀랄 지경.

– 천황의 권위 역시 재래의 신뿐만 아니라 불교와 일찍부터 깊은 관련을 가지면서 유지. 일본열도에 결코 하나의 국가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복수의 국가 존재. 동서 양국의 경계를 두고 가마쿠라시대에 동국은 쇼군이 서국은 천황이 재정.

– 7세기 후반부터 8세기 초반에야 비로소 ‘왜’가 아닌 ‘일본’이라는 국호를 정하고 왕의 칭호도 천황으로 함. 일본국이라는 국가가 확립되자 여태까지와는 상황이 확 달라짐. 이 국가의 지배층은 특히 6세기 이후의 중국 대륙이나 한반도와의 교류를 전제로 처음으로 본격적인 ‘문명’을 일본열도에 체계적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중국 대륙에 세워진 대제국 당의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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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13일 그 많은 왜군들과 군량을 배에 싣고서 용하게 부산진 앞바다에 왔다… 싶었는데…

이미 그 시절을 전후해서 왜와 일본 지배층은 부두에 들어오는 배를 붙들고 통행세를 걷었고,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에 성을 쌓아서 통행료와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배들이 있으면 작은 배들을 끌고 나가 붙들어서 한방씩 먹였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십만양병설도 후에 만들어졌고, 왜놈들이 백두대간의 최북단 영주 부석사 인근을 넘나들었다는 말도 있듯이 이 책과 같이 우리나라 역사도 새로 읽어야 할 부분들이 상당히 있을 듯하다.

조선 후기 우리에게 쇄국정책이 큰 이슈로 부각되는 시점 훨씬 전에 일본은 이미 상업이 부흥하여 세상을 향했다. 그 역사의 기록 속에 일본은 그저 중국을 향해 한반도와 교류하였다라고 무시하고 있는 글도 접해서 한편으로는 제법 씁쓸하기도 하다.

좋다. 지나간 500년 정도는 묻어두기로 하자, 어차피 되돌릴 수 없으니….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나 혹은 우리 한반도는 세계와 미래를 향하고 있는가?

역사와 인생에 우연은 없다.

뿌린 대로 거두고, 행하거나 행하지 않은 만큼 대가를 치른다.

일본의 역사를 새로 읽는다 – 아미노 요시히코 지음 / 임경택 옮김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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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들로 상식선에서 알고 있는 대부분의 일본인들도 잘 모르는 일본 역사의 미처 몰랐던 부분도 있고, 살짝 부끄럽기도 한 여러 일본의 내면과 속살을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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