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회 – 김동춘지음/돌베개

글쓴이 조통 | 작성일 2015.2.13 | 목록
김동춘 지음
발행일 2006년 11월 30일 | 면수 488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8,000원

아직도 우리는 한국전쟁을 한쪽에서만 바라보고 있다.

남이나 북이나…

남쪽에서 바라보는 전쟁에 대한 시각을 잠시 살펴보면~

​아직도 우리는 "어느 평온한 일요일 새벽 쏘련제 땅크를 앞장세우고 남침한 북괴군에 밀려서 미아리 고개를 넘어서 낙동강까지 후퇴하여 갔다가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 근처까지 갔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를 해서 원산항을 흥남부두 철수를 통해 지금까지 군사분계선을 두고 빨갱이와 대치하고 있는 위기 정국"​이라고 하는 단일화된 시각으로만 씌여진 역사만 인정하고 나머지 다양한 접근에 대해서는 사상적으로 빨갱이라고 하는 빨간 안경을 쓰고 바라볼 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이라는 잣대를 들이데는 것 또한 작금의 현실.

전쟁이​ 이렇게 간단하게 시작되고 그렇게 잘잘못이 쉽게, 시시하게 밝혀지고, 그 전개 과정이 어느날 새벽 문득 자다 뒷통수 맞듯이 시작되고 끝난 전쟁은 지구 상에는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 가까운 역사만 돌아봐도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그리고 일제에 의한 강제 병합이 어느 날 퍽 하고 우리 뒷통수를 친 것이 아니란 것은 삼척동자 혹은 길거리에 노닐고 있는 초딩들 또한 잘 알고 있으리라…

물론 한국전쟁 또한 마찬가지…

이 책은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후한 양측 정권의 상황과 처신 그리고 그 처신과 관련한 전쟁기간 중의 민간인 학살 문제 등을 부각시키고 그것들이 어떻게 이후 한국의 만성적인 국가폭력과 인권 침해로 연결되는지도 지적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30여 년이 지난 시점인 80년대에 들어서야 김계동, 박태균, 정병준 등의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가 되기 시작되고 2000년 이후에야 겨우 여러 가지 논문들이 학회에 발표되기 시작하였다.

이 책 또한 2000년 이후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연구 논문과 구술 청취, 인류학적 조사 등등을 반영하여 전쟁을 사회사, 지역사, 생활사 혹은 인류학적 측면에서 접근한다.

아직도 우리는 평화공원, 평화기념관이 아니라 전쟁기념관, 전적기념비, 심지어 최근 누구 전역 기념비를 세우기도 하는 전쟁을 진행형으로 기억하고 추념하려는 사회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왜 우리는 전쟁으로 인한 교훈을 미래의 동력으로, 가능성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과거의 전쟁에 얽매여 아직도 그 전쟁을 평화협정으로 이끌어 종식시키지 못하고 정전협정을 맺어 아직도 전쟁 중인 상태로 놔두며 그 많은 국방비를 서로 소모하며 많은 국력을 소모하며 서로들 지쳐가고 있고 거기에 쏟는 돈을 평화를 위하여, 미래를 위하여 사용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적극적인 토론조차 쉽게 하지 못하는가에 대해서도 묻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38선 분단을, 군사분계선이 갈라놓은 그 금에서 한 걸음도, 단 한 줄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일깨워 준다.

어서 빨리 전쟁기념관을 평화기념관으로, 비무장지대를 평화 공원으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야 하고 반목과 질시를 대화와 타협으로, ​아울러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를 다양한 경로와 계층, 사람들이 서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38선을 중심으로 전쟁이 발발과 경과를 보면 지극히 남북간의 내전이었으나 외세를 서로 등에 없고 철저하게 국제전을 치렀던 한국전쟁은 국제전이면서도 철저하게 사상전, 정치전적 성격을 띠는 바람에 전쟁과 관계없는 비전투 인력이 숱하게 숨져간 한국전쟁….

지금도 진행형인 한국전쟁의 1950년 전후에서 벌어진 피난, 점령, 학살이라는 정치 사회학의 심부를 또 다른 전쟁/피란/점령/학살/국가주의를 넘어서라는 5가지로 나누어 찬찬히 열어본다.

​내용 중에는 알만한 내용들도, 몰랐던 내용들도… 손을 떨리게 하는 내용들도 제법 나온다.

미국의 심기를 건드릴 정도로 소련이 강하지 않았고 사실상 한 몸으로 간주된 소련과 북한이 한국을 침략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덕분에 CIA, 주한연락부 등 수많은 월북 정보요원들의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도 그를 무시할 수 있었다.

북한군은 남한을 기습했을지 모르나 ‘소련’ 혹은 세계 공산주의 정치 세력은 미국에 대해 기습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또 한국군과 국민들은 그것을 기습으로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만일에 대비하여 남한에 거주하던 자국민 피난 대책을 철저하게 수립한 것만 보더라도, 한국 전쟁은 미국에게 충분히 예고된 사태였다.

한국전쟁 이전이나 발발 직후에도 소련, 중국과 협상을 통해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은 미국이 남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과 그것을 통한 미국의 적극적 이익 확보보다는 자신의 체면 유지와 현상 유지를 원하고 있었으며, 북한의 남침을 격퇴하는 것 이상으로 소련의 심기를 건드릴 행동을 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한국전쟁을 과거의 사실로만 이해할 경우 우리는 남북한의 평화와 통일 문제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으며, 21세기 동북아 평화를 모색할 때도 제대로 교훈을 얻을 수 없다. 한국전쟁을 현재진행형으로 보지 않을 경우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한 배경과 당시 전쟁을 방지할 수는 없었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앞으로 전쟁을 방자하기 위해,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미국이 동아시아 전략은 어떤 성격을 갖는지, 중국의 재무장과 경제 부흥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북한의 핵 개발은 어떻게 억제되어야 하는지, 또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별다른 교훈과 전망을 얻을 수 없다. 결국 이 글은 지금까지 이 한국전쟁 연구의 한계를 넘어서서 한국전쟁이 전면적으로 새로 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

이승만을 비롯한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가능했던 대한민국의 극소수 최고 엘리트층과 일반 민중들은 6.25 발발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유는 양자기 극히 상이하다. 전자는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냉전질서 속에서 한국전쟁이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를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인 데 반해, 후자는 북한과 인민군이 내려와도 자신의 삶이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토지개혁 등 북한에서 흘러온 소문대로 더 좋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장 크게 놀란 집단은 인민군 치하가 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군, 경찰,공무원 등 국가기구의 구성원들과 월남자, 기독교인, 지주, 자본가, 부일 협력자 등 남한 지배층 일반이었다.

​그런데 한국전쟁 종료 후 지금까지 앞의 두 집단의 반응은 완전히 잊혀지고 후자의 반응만이 주로 부각되었다. 피란 여기 초기의 ‘정치적’피란과 이후 1.4 후퇴 혹은 미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한 ‘생존 목적의’피란을 구분해야 하는데도 모든 피란 행동을 ‘공산주의를 파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으로 해석해 왔다.

이미 전쟁 시작 전에 한반도에 ‘살인 냄새’가 풍기고 있었으며, 전면전이 발생했다는 소식은, 1950년 6.25 이전 한반도의 남북에서 이미 저질러지고 있던 좌, 우익 간의 유혈 충돌이 이제는 공식적인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음흉한 신호탄이었다.

1954년 맥아더는 한 세미나에서 "한국이 우리를 구해 주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커밍스는, 뉴딜이 금세기 미국의 제1차 국가 부흥의 계기였다면 한국전쟁은 제2차 국가부흥의 계기였다고 지적하였다.

한편 일본의 전 수상 요시다 시게루 역시 한국전쟁을 두고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하였다. 전후 일본의 부흥은 한국전쟁이라는 선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전쟁은 이승만이 예상했던 대로 위기의 이승만 정권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또한 전쟁 과정에서 그리고 전쟁 이후에 북한의 김일성은 자신의 정적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게 됨으로써 ‘김일성 유일체제’의 기반을 닦았다. 그리고 사회주의적 공업화를 더욱 급속하게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얻었다. ​

​미,소에 의해서 갈라진 38선의 남과 북에 만들어진 서로 다른 사상과 권력의 존재만으로도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던 한국전쟁… 그 비극을 막고자 한 민족주의자들은 비명에 사라지고 남, 북에 존재했던 탐욕에 눈이 먼 두 사람의 집권욕, 국제적 이해관계에 의해서 조장됐던 한국전쟁은 아직도 그 주동자와 방조자들에 의해서 진행형이라고 본다.

지난 역사가 말해주듯 부패한 정권과 지도층에게 흘러가는 모든 역사의 책임을 덮어 씌우고 책임지라고 하는 단순한 역사의식에 발목을 잡혀있으면 똑같은 역사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지극히도 자신의 이익만을, 외세 의존적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사회적 기반 그리고 그러한 지도자들을 추대한 인민과 국민들의 의식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방위원장을, ​대통령을 탓하기 전에 그들에게 매달여 깍두기 국물이라도 얻어먹으려 매달려있는 벼슬아치들이 형성된 국내외적 여건, 그리고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무엇을 가장 먼저, 가장 가치 있는 일들인지 가려내어 그 건전한 방향성을 구하고 모두 그쪽을 바라봐야만 한다….

이미 700년 전에 단테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라고 한다….

이러다가 내가 그 뜨거운 불구뎅이에 떨어지는 건 아닌지 각자 돌이켜 봐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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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사회 - 김동춘지음/돌베개] 인간을 동물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근대문명 최악의 재난이었던 한국전쟁, 그 이면의 역사를 재조립 해서 한국전쟁이 이승만과 한국의 지배층, 그리고 민중들에게 각각 무엇이었는지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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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로서 올여름 준비했던 ‘한국전쟁’바로 알기 1차 프로젝트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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