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 박지원지음/김혈조옮김/돌베개

글쓴이 조통 | 작성일 2015.2.13 | 목록
박지원 지음 | 김혈조 옮김
발행일 2009년 9월 21일 | 면수 512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05,000원

열하일기를 완독했다…..

책에서 희노애락애오욕 7정의 모든 상황에 눈물이 나게 된다고 말하며 ‘통곡하기 좋~은 곳이다.’라고 쓴 글귀가 기억이 난다.

지금 심정 같아서는 어디 이 열하일기를 다 읽은 친구 한 놈 붙들고 막걸리 한 잔 하면서… 쨍하니 추운 오늘 같은 날 밤새 열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떠들며 완독을 기념하여 칠정을 다 토해내고 꺼이 꺼이 울고 싶다.^^;;

열하일기는 연암이 청나라 건륭제 70세 생일을 사절단에 소속되어 1780년 5월 25일 한양을 출발해 그해 10월 27일 돌아오기까지의 총 156일간의 3,069리(김혈조작가의 메모의 거리를 참고 함)에 이르는 여정(8월 1일까지는 69일)을 그린 연행록(조천록과 동의이나… 청을 깔보는 투로 연행록, 명을 받드는 조천록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였다.)이다.

← 김혈조 교수님이 메모해서 나누어준 교재

연암이 다녀오는데 156일… 나는 그의 글을 따라 열하에 다녀오는데 딱 절반인 75일…

권당 500페이지가 넘는 3권 1,500페이지를 대충 훑어보는 데만 2011년 11월 20일부터 2012년 2월 2일까지 딱 75일이 걸렸다.

다행스럽게도 중간에 설 연휴가 있어서 고향에 내려가고, 오고 하는 시간을 벌어서 그 시간에 부지런히 책을 봤다.

1,500페이지가 넘는 열하일기를 완역한다는 것 자체가 대 역사라는 생각이 책을 보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물론 열하일기 북 콘서트에 참가하여 김혈조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어느 정도 감을 잡고 들어간 책이지만… 책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 또한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나의 짧고 얇은 지식수준의 한계인가… 싶다.(물론 완역한 역자도 대업을 이루었지만, 이 방대한 양의 서적을 편집 교정, 편찬한 출판사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상업성이 아닌 작품성에 목숨을 거는 무모한 도전을 했다… 나에게는 무한도전으로 보이지만~^^)

아무튼 열하일기 완역본을 완독하였다.

"나 열하일기 완독한 남자야!!!"라고 어디 가서 명함 내밀 수 있게 되었다는 뿌듯함 또한 같이 밀려 온다.^^

책으로 들어가 볼까나…

연암은 이 책은 당시에는 공간되어 환영받는 책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예나 지금이나 변화와 적응을 원하지 않는 보수, 꼴통(?) 세력은 어디에도 있는 법, 급변한 명/청의 정세를 굳이 인정을 하지 않으면서 버티는 그 시절에 대한 풍자와 비판의 문,필체는 그들의 마음을 심드렁하게 했을 것이리라…(어찌 이리 그 때나 지금이나 바뀐 것이 하나 없는가 싶다… 지금 동북아 정세는 다시 일본의 지는 해와 중국의 뜨는 해로 비교가 되는데… 정부는 중국을 견제 해달라고 미국에 애걸하다가 미국의 시선을 잘못 이해했다고 생각하는지 전화를 받았는지 갑작스레 지금에는 유화 제스처를 보이면서 혼선에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당시 양반들이 중국을 보는 시각이나 현 정부가 중국을 보는 시각과 태도가 비슷한 것 같아서 이 책을 보는 내내 영 마음이 떨떠름~ 하다)

아무튼 이 책은 덕분에 문체반정 대상이 되어 정조가 수정을 지시하여 그를 수용함으로써 몇몇 필사본으로 전승되어 근대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불온서적으로 낙인이 찍힌 일종의 금서이다가…. 근대의 문턱인 1911년에 와서야 비로소 활자본을 발행하게 된 사연이 많고도 깊은 열하일기 원본을 번역한 번역서이다.

아무튼 옮긴이는 내용은 각자 열어보라고 말하며 주목할 내용을 아래와 같이 굴직하게 전체적으로 조망, 요약한다.

1.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2. 선진 문화 문물을 본받아야 한다는 북학의 내용이다.

3. 천하대세를 어떻게 전망했는가? 가 주제이다.

4.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간 유형에 대한 묘사와 인물 형상의 창조이다.

5. 선비 곧 지식인의 역할과 처신에 관한 문제이다.

그리고 옮긴이는 "있었던 세계 그리고 있는 세계에 대한 비판과 통찰을 통해서 있어야 할 세계를 전망하고 모색한 것"이 열하일기의 진정한 주제라는 사실에 동의할 것을 요청한다.

옮긴이는 약 1시간 내외의 강의를 통해서 열하일기와 관련된 옮긴이의 글로 다 옮기지 못한 여러 시각과 사상과 생각을 이야기해주었다. 콘서트 내용을 대충 전하자면 이러하다~

열하일기는 자신에 대한 글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양하게 움직인 것을 책 속에서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이 조선과 청을 연결하는 서적이 될 것이라 생각을 하고 글을 이어 나갔다. 글을 쓰는 분위기를 보면 다산은 학자이고, 연암은 문인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글을 조금이라도 접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가 메모한 글, 종이만 한 보퉁이가 될 정도로 방대한 물량의 자료를 축적하여 귀국하였으며 귀국 이후에도 무려 15년이나 뒤에 이 책이 나오게 될 정도로 연행 내내..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다 베껴왔다. 심지어는 길거리에 있는 비석의 비문까지 몽땅 베껴서 가지고 온 것이다. 곳곳에서 관찰한 천하의 대세, 어떤 동력으로 지배를 하는가? 인민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 승덕에 곳곳의 사람들을 다 불러 모으는 이유는 무엇인가? 책 읽는 선비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옮긴이는 역설하고 있다.

연암은 16세에 결혼하여 문학 수업을 받게 된다. 처삼촌인 이양천으로 부터 수학하면서 시험은 치고 과거를 보러 가기는 했다. 과거를 보러 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면… 장 보러 가듯 과거 보러 간다는 것이다. 딱히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술 한 잔 하고, 서울을 구경하고 정보를 습득하러 간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기에 장 보러, 과거 보러 간다는 뜻의 단어가 된다. 거기서 연암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몸 싸움, 대리시험, 대필, 시험지 끼워 넣기 등의 부정부패를 목격한다. 주위에서도 그의 과거를 보러 간 것을 두고 그의 장인은 무척 실망했다고 말을 전하는데…. 사위가 백지 시험지를 내고 왔다고 하니…"과연 내 사위 맞구먼…"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그로 인해 그의 나이 34살에 과거를 포기한다.

그는 간접적으로 선대의 산소 문제로 송사로 인해서 과거 시험을 포기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스승 이윤형(?)이 연암이 마음에 들어 친구하라고 인연을 맺어준 그의 아들 이희천(?)이 중국의 금서를 가지고 있다가 발각되어 사형을 당하는 사건(본 서적은 이성계의 전주 이씨에 대한 악의적인 중국책이라고 함)을 보고 벼슬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고 집권당 노론이었으나 세상을 멀리하고 조기에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그는 일생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거짓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연암이란 곳은 개성에서 30리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책 곳 곳에서 연암의 호기심을 발견 할 수 있는데… 아마도 연암의 호기심은 나의 학문적, 일상적인 호기심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궁금한 일이나 사안이 생기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 사람인 편인데 야행을 하고 달빛에 나와 글을 쓰거나, 야행을 해서 술집에 들르거나 상가에 가보는 등의 재미있는 기행도 곳곳에서 나온다.

그의 글 사이사이에 민족의 사회의 위기에 책 읽은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교훈이 3편에 숨겨져있다. 다산의 글은 직접 글을 보면 알 수 있으나 연암의 글은 글 뒤에 곳곳에 사이사이에 숨어 있어 잘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는 5가지 망령된 행동을 말하고 있다.

1. 양반이라고 뽐내며 청조 지배하의 한족을 경시하는 태도.

2. 한 줌도 안되는 상투로, 중국인의 변발과 의복제도를 멸시하는 태도.

3. 명나라 시절 취했던 극도의 사대적 행동과는 달리 청나라 관리들에게 오만무례하게 대하는 태도.

4. 중국의 찌꺼기 문장을 학습한 주제에 청나라에는 좋은 문장이 없다고 호언장담하는 태도.

5. 한인들이 청 황제에게 반역으로 몰릴까 근신하는 모습을 두고 춘추의리를 모른다고 탄식하는 태도.

연암이 232년 전에 연행을 했던 시점은 광해 10년 1618 누루하치 선전포고, 1626 정묘호란, 1636 병자호란을 거쳐 조선이 초토화 되고 무려 40만 명이 넘는 백성들이 인질로 끌려간지 불과 144년 밖에 안 지난 시점이었다. 그날의 치욕이 채 가시지 않았던 시점에 민족적 자긍심을 지키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힘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조선 사대부들은 그 수준보다 더한 오만 방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는 시각이지만….. 어떻게 보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행동일 수도 있는 일이다….. 아무튼 북벌, 북학이 명분으로만 지켜지던 시절 실리를 추구하는 문학가인 연암의 눈에 보인 청에 대하여 정확하게 기술함으로써 진정한 교훈을 찾아내고 남겨 후대에 전하려 한 기행문이 아닌 교훈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점은 그가 관료이거나 정치인이 아닌 문인으로서 붓을 놀리기에 편한 위치에 소속하여 있던 시절과 세상이라서 더 편하게 글을 써 나갔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처럼~

나는 이 책을 돌베개 "행간과 여백"에서 김혈조 교수의 친절한 설명과 더불어 분양하여 인연을 맺었고 완독에 이르렀다.

연암을 따라 겨울로 들어섰다. 그의 행적을 따라다니며 232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가질 교훈, 진정한 교훈은 무엇인가를 알게 되니 겨울이 무르익고 있다. 아마도 연암은 후대에 나같이 천하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국가와 민족이 사회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글을 읽은 선비(지금은 고학력(?) 급여 생활자)가 어떻게 처신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가르쳐 주려고 이 책을 펴낸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몸과 마음이 다 부끄러워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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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 150여 일 걸려 기행 한 열하를 그 글을 따라가는 데만 75일 걸렸다. 늦가을 잡은 책을 놓으니 큰 눈과 추위가 책상 옆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지식인들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눈 내린 새벽길 어지러이 걸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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