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학 공부
발행일 | 2018년 6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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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98526 93800 |
면수 | 412쪽 |
판형 | 신국판 152x225mm, 반양장 |
가격 | 20,000원 |
ㅁ
500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과 200년 뒤에도 여전히 유효한 철학. 조선 후기 최고의 학자 다산 정약용이 이룩한 학문 세계는 너무나 심오해 전문 연구자들도 다산의 수많은 저술 중 한 권을 실마리삼아 겨우 첫발을 뗀다. 그러니, 다산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에게 다산의 학문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커다란 벽과 같다. 하지만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다산학의 대강을 접해보는 건 가능하리라. 대가로부터 신예까지 대표적인 다산 연구자 14인이 각자의 전공을 바탕으로 다산학을 해제했다. 이 책은 다산의 학문과 사상을 공부하는 길잡이로 삼기에 충분하다.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 다산학茶山學의 현재적 가치
다산 정약용(1762∼1836)은 18세기 후반기를 살다 간 인물로, 정조의 치세를 도와 이른바 조선 후기의 문예부흥기를 이끈 학자이자 문인이다. 이 시기 다산은 한강에 배다리를 가설하고 수원 화성을 축조하는 등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그의 학문의 온축은 아이러니하게도 생애 후반기, 즉 18년간의 유배 기간에 완성되었다.
다산은 그의 나이 40세부터 57세까지 18년간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갔고, 이 시기에 50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했다. 이 시기 이룩한 학문적 결실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다산학’이라는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여러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다산학인가? 다산의 학문이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청렴이란 공직자의 본질적인 임무다. 모든 착함의 근원이요 모든 덕의 뿌리이다.
청렴하지 않고는 공직자 노릇할 사람이 없다.”
다산은 자신이 사는 시대는 털끝 하나라도 병들지 않은 분야가 없으며,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라 했다. 부정과 비리가 판을 치고, 부패하다 못해 썩어 문드러졌다며 탄식을 멈추지 못했다.
다산은 이러한 시대를 어떻게 살았는가. 다산은 과거에 급제한 날, ‘공렴’公廉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를 새기며, 나라를 위해 복무하겠노라 굳게 다짐했다. 공렴이란, 풀어서 이야기하면, 공정하고 공평한 직무 수행으로 공익을 위해서 일하고 사욕이나 사익은 추구하지 않겠다는 것을 말한다. 관직에 나아가서는 공렴으로 직무를 수행하고, 관직에서 물러나서는 공렴을 제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공정함과 청렴함을 의미하는 이 ‘공렴’이라는 키워드는 다산학을 관류하는 정신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세상은 어떠한가. 다산의 시대보다 많이 나아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불공정하다. 가장 공정해야 할 법관들마저 사익私益을 위해 움직인다. 빈부격차와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재력가만이 나라의 주인으로 자처한다. 200년 전의 다산이지만, 다산의 정신은 오늘 이 나라에서 가장 빛을 발해야 할 정신적 유산이 되었다. 그릇된 관행을 청산하고 헌법·법률 등 법제 개혁에 나설 때 다산의 학문은 많은 가르침을 줄 것이다. 다산이 혼신의 노력으로 남긴 다산학은 어쩌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학문이다.
다산학의 전개와 완성
1800년 6월, 정조가 갑자기 붕어하고, 1801년 천주교인을 탄압한 신유사옥이 일어난다. 이 사건은 다산의 집안을 풍비박산으로 만들었다. 다산의 셋째형 정약종은 참형을 당하고 둘째형 정약전과 다산은 기나긴 유배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 다산의 나이가 40세였다. 다산이 유배지인 강진에 도착한 날 내뱉은 일성이 기록으로 전한다.
“이제 나는 겨를을 얻었다. 하늘이 나에게 학문을 연구할 기회를 주었다. 벼슬하느라 당파에 시달리느라 책도 못 읽고 저술도 못했는데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학문연구에 몰두하자!”
곧바로 주역과 상례喪禮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4서 6경의 경전 공부를 시작하여 1816년경에는 경학經學을 대체로 마쳤다. 1818년 해배되기까지의 마지막 기간에는 경세학經世學에 마음을 기울여 『경세유표』·『목민심서』 등을 저술했고 미처 끝내지 못한 『흠흠신서』는 고향집에 돌아와 저술을 마쳤다. 유배기간인 18년 동안, 경학과 경세학을 연구하던 기간 중에도 다산은 수많은 서정시 및 사회시를 지어 19세기 초반 강진 일대의 풍속과 세태를 읊으며, 압제와 핍박에 시달리던 농어민의 참상을 눈물어린 시어로 대변했다. 「애절양」哀絶陽, 「고양이」 등 대표적인 사회시들이 이 시기에 저작되었다.
다산학의 정점을 파헤치다!
이 책은 한국의 대표적인 다산학 연구자 14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다산학에 접근한 결과물이다. 큰 산은 들어가는 길도 여럿이듯, 다산의 학문은 그만큼 광대하다.
다산학의 양대 분야인 경학經學과 경세학經世學은 본래 공자의 학문에서 유래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사람이 배워야 할 학문으로 수기修己에 힘쓰는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치인治人에 힘쓰는 ‘위인지학’爲人之學을 이야기했다.
다산은 경학을 수기修己로 삼고, 경세학으로 치인治人을 도모했다. 경학이 본이요 경세학이 말이며, 양자를 모두 갖춰야 수기치인의 학문이 완성된다는 것이 다산의 생각이다. 유교의 경전인 육경六經과 사서四書의 연구가 경학이요, ‘일표이서’(『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로 정리한 연구가 경세학이다.
◎ 1부 ‘경학’에서는 사서삼경을 다룬 다산의 저작을 소개했다.
다산은 수기의 학문인 경학을 연구하여 『모시강의』 12권, 『상서지원록』 7권, 『상례사전』 50권, 『악서고존』 12권, 『주역심전』 24권, 『춘추고징』 12권, 『논어고금주』 40권, 『맹자요의』 9권, 『중용자잠』 3권, 『대학공의』 3권, 『소학보전』 1권, 『심경밀험』 1권 등 경집經集 232권이라는 엄청난 결과물을 내놓았다. 다산은 마음을 수양하고 인격을 높이는 일이 경학 공부의 최종 목표임을 주장했다.
『대학공의』(1814)는 『대학』을 주석한 책이다. 이영호 교수는 주희와는 다른 다산의 『대학』 인식을 개관하면서, 마음의 수양이 아닌 인륜의 실천에 뜻을 두었다고 파악했다.
『맹자요의』(1814)에서 다산은 『맹자』의 해석을 통해 혁신적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다. 백민정 교수는 성기호설 등 다산의 혁신적 인간상을 구성하는 주요 개념을 설명했다.
『논어고금주』(1813)는 다산이 『논어』에 관한 여러 주석을 종합 논평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 책이다. 김언종 교수는 『논어』에 관한 다산의 독창적 견해를 소개했다.
『중용자잠』(1814)은 『중용』을 주석한 것으로, ‘자잠’自箴(스스로 경계하는 글)이란 제목에서 수양서의 성격이 드러난다. 이광호 교수는 『중용』의 성誠 개념을 비롯한 다산 경학의 주요 개념과 연관을 설명해 다산 사상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시경강의』(1809)는 다산이 30세 때(1791) 초계문신으로 있으면서 『시경』에 관한 정조의 물음에 답한 것을 손질한 글이다. 김수경 박사는 다섯 개의 키워드(사무사思無邪 등)로 다산의 『시경』 읽기의 핵심을 개괄했으며, 경전 읽기의 시사점을 제공했다.
『상서고훈』(1834)은 유배지에서 천착한 『상서』 연구를 해배 이후에 손질한 것이다. 이은호 교수는 다산이 『상서』의 본모습을 회복하여 도덕과 역사의 전범으로 읽힐 수 있게 했다고 소개했다.
『주역사전』(1808)은 다산이 자신의 대표 역작으로 자부한 책이다. 방인 교수는 추이推移, 효변爻變, 호체互體, 물상物象 등 다산의 『주역』 해석 방법을 설명했다.
◎ 2부 ‘경세학’에서는 다산의 대표 저서인 일표이서를 다루었다. 여기에 다산의 시와 논설, 그리고 실학적 독법을 덧붙였다.
『경세유표』(1817)는 본격 경세서로, 국가 제도 개혁론을 담은 책이다. 김태영 교수는 다산의 토지제도를 비롯한 제도론의 핵심 내용과 역사적 의미를 살피고 있다.
『목민심서』(1818)는 지방 수령의 지침서다. 임형택 교수는 『목민심서』의 저술 배경과 요점을 개관하고, 민民을 중심으로 하는 다산의 정치론을 소개하고 있다.
『흠흠신서』(1819)는 형사 사건을 다룬 책이다. 김호 교수는 다산이 진정한 흠휼 欽恤을 위해 법의 원칙과 사건의 정황을 고려한 최선의 판단에 이르고자 노력한 여러 사례를 소개했다.
다산은 2500여 수의 시를 남겼다. 송재소 교수가 ‘병든 사회의 임상 보고서’라고 명명했듯이 다산의 시는 시대의 아픔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학문과 일체가 된 다산의 시에서 그의 사상과 인간미를 볼 수 있다.
다산의 대표 정론(경세론)인 「원목」, 「전론」, 「탕론」 등에 관해서 김태희 박사가 설명을 붙였다. 경세를 위한 다산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산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한형조 교수의 글이 그 방향을 제시한다. 한 교수는 다산이 공자 또는 고전을 어떻게 읽었는지 보여 주었다. 아울러 근대화론에 갇힌 협애한 독법에도 일침을 가했다.
책을 엮으며
서문 / 오늘 여기, 왜 다산인가 ― 박석무
1부 경학
『대학공의』 / 천하를 다스리는 근본 ― 이영호
『맹자요의』 / 『맹자』 읽기의 진수, 다산의 혁신적 인간상 ― 백민정
『논어고금주』 / 다산이 찾은 공자의 마음 ― 김언종
『중용자잠』 / 사람 섬김이 곧 하늘 섬김이다 ― 이광호
『시경강의』 / 다섯 개의 키워드로 읽는 다산 『시경』 ― 김수경
『상서고훈』 / 『상서』에서 찾은 새로운 도덕론 ― 이은호
『주역사전』 / 『주역』의 퍼즐 풀기에 도전하다 ― 방인
2부 경세학
『경세유표』 / 낡은 국가 혁신론 ― 김태영
『목민심서』 / 다산의 정치학 ― 임형택
『흠흠신서』 / 진정한 흠휼을 구상하다 ― 김호
다산 시詩 / 병든 사회의 임상 보고서 ― 송재소
다산 논설 / 모든 백성을 잘살게 ― 김태희
다산 경학 / 유교 고전의 실학적 독법 ― 한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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