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노래(우리고전100선 02)

김시습 선집

김시습 지음 | 정길수

발행일 2006년 11월 27일
ISBN 8971992522 04810
면수 280쪽
판형 국판 148x210mm
가격 8,500원
분류 우리고전 100선
한 줄 소개
비운의 천재요 어떠한 구속에도 얽매이기를 거부했던 자유인이었으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세상 밖에서 고독한 삶을 살다 간 김시습의 대표 작품 선집이다.
주요 내용

전통시대 비판적 지식인이 걸었던 삶의 궤적을 쫓아가다.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유(儒)·불(仏)·선(仙) 3교의 영역을 넘나든 사상가요 당대 정치의 폐해와 인민의 현실에 주목했던 비판적 지식인이다. 이 책은 그의 시와 산문, 그리고 걸작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매월당 김시습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김시습은 비운의 천재요 어떠한 구속에도 얽매이기를 거부했던 자유인이었으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세상 밖에서 고독한 삶을 살다 간 절의(節義)의 상징이요 유·불·선 각각의 영역에서 저마다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채로운 사상가이기도 하다. “세상과 나는 모순(矛盾)”이라는 자신의 외침처럼 고독한 외곬의 자의식 강한 인물이었지만, 갈림길에 설 때면 주저하며 어쩔 줄 몰랐고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면 늘 회한 어린 탄식을 쏟아내는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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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옮긴이

김시습 지음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조선 초기의 문인, 학자. 자는 열경(悅卿), 호는 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매월당(梅月堂), 법호는 청한자(淸寒子; 혹은 청한淸寒), 법명은 설잠(雪岑)이다. 반궁(泮宮) 북쪽의 초가집에서 부친 김일성(金日省)과 모친 울진 장씨(張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439년(세종 21), 5세 때, 정승 허조(許稠)가 집으로 찾아와 김시습의 시재(詩才)를 확인하였고, 이후 조정의 고관들이 김시습을 보기 위해 자주 집으로 찾아왔다. 김시습이 ‘오세신동’으로 불린 것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1443년(세종 25), 9세 무렵 세종이 승정원 승지 박이창(朴以昌)으로 하여금 김시습을 대궐로 불러 그 재능을 확인케 했는데, 김시습은 박이창 면전에서 시구를 짓고 글씨를 썼으며, 세종은 박이창을 통해 김시습에게 금포(錦袍: 비단 도포)를 하사하고 ‘훗날 이 아이를 크게 쓰겠다’는 말을 전한다. 1455년(단종 3, 세조 1), 21세 때, 삼각산 중흥사에서 과거 공부를 하던 중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았다는 소식을 듣자 문을 닫고 3일을 나오지 않다가 홀연 통곡하고 책을 다 불태워 버린 후 미친 시늉을 하며 측간에 빠졌다가 달아났다. 이후 삭발한 후 중이 되어 법명을 설잠이라 하였다. 1463년(세조 9), 29세 때, 경주 금오산(남산) 용장사(茸長寺)에 우거하였는데, 이후 1467년경,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쓴 것으로 보인다. 1481년(성종 12), 47세에 환속했지만, 성종이 계비(繼妃) 윤씨를 폐비(廢妃)하고 사사(賜死)하는 사건을 보고 2년 만에 다시 승려의 복장을 하고 관동으로 향했다. 1493년(성종 24), 59세 때 「자사진찬」(自寫眞贊)을 짓고, 곧바로 이 해 2월, 무량사에서 숨을 거두었다. 자세한 사항은 『김시습, 불교를 말하다』(2024, 돌베개) ‘연표’ 참조.

정길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 『구운몽 다시 읽기』 『17세기 한국소설사』, 편역서 『길 위의 노래―김시습 선집』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허균 선집』, 논문 「전쟁, 영웅, 이념」 등이 있다. 한국 고전소설과 한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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