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야담 2(千년의 우리소설 10)

박희병, 정길수

발행일 2018년 1월 22일
ISBN 9788971998335 04810
면수 200쪽
판형 변형판 150x215, 양장
가격 12,000원
분류 千년의 우리소설
주요 내용

이 책은 『조선의 야담 1』에 이어 조선 후기에 창작된 야담계소설(野譚系小說) 열두 편을 실었다. ‘야담계소설’이란 야담(野譚), 곧 민간에서 구연(口演)되던 시정(市井)의 이야기가 한문으로 기록된 것 중 소설에 해당하는 작품을 가리킨다. 야담계소설은 17세기 후반에 성립하여 18세기에 대대적으로 발전해 갔으며, 19세기 전반기에는 『청구야담』과 같은, 야담계소설을 집대성한 작품집이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야담, 서민의 소망을 담다!

 

야담계소설은 한문으로 적혀 있으나 종종 구어체 분위기가 느껴지고 문체도 소박한 편이다. 이야기꾼이 재미난 이야기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청중이 되어 경청하던 장면이 그대로 글로 옮겨졌기 때문인데,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 「소낙비」 속에 이러한 야담의 현장이 고스란히 구현되어 있다.

야담은 시정의 이야기인 만큼 소재가 다양하고 각계각층의 인물이 등장한다. 또한 서민의 소망을 표현한 작품이 많아 조선 후기 서민 생활의 단면을 살피는 데도 도움이 된다. 열두 편의 작품 속에 내재된 서민의 소망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소망 하나, “하층민도 인간이다!”

야담 속에 담긴 당대인의 소망 중 눈에 띄는 점이 바로 하층민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야담의 필자는 분명 사대부 양반이지만, 이들이 주인공으로 삼은 이는 하층민인 경우가 많다. 하층민 중에서도 양반보다 뛰어난 안목과 감식안을 가진 노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엄격한 신분제약으로 제 뜻을 펼치지 못하는 조선의 인재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노비도 뛰어난 자질을 지녔다면 그에 걸맞은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18세기 조선의 양반 지식인에 의해 표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임매가 지은 「기이한 하인」의 서두에는 이러한 당대 지식인의 생각이 담겨 있다.

 

패악하고 거만한 자를 ‘종놈’이라 부르고, 어리석고 용렬한 자를 조롱하여 ‘노재’(奴才)라고 한다.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은 대개 어리석어 사람들에게 천시 당한다. 중국에서도 예로부터 그러했거니와 우리나라의 습속은 더욱 심해서 노비 멸시하기를 개나 돼지, 소나 말을 대하듯이 한다. 그러나 노비 가운데 어찌 영웅호걸의 자질이 없겠는가? 하늘이 재주를 내릴 때 본래 땅을 가리지 않는 법이다. (…)

 

「기이한 하인」의 하인이 그런 인물이고, 「여종의 안목」의 주인공인 지혜로운 여종이 그러한 인물이다.

「우병사의 아내」는 영조 때 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우하형과 그 첩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는데, 우하형이 곤궁하던 시절 평안도 변경에서 지혜로운 퇴기(退妓)를 첩으로 맞아 그녀의 도움으로 출세하는 내용이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단연 우하형의 첩이다. 우하형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그를 위해 거금을 쾌척하는 대목부터 여주인공의 지인지감(知人之鑑)이 돋보이며, 특히 조정의 인사를 꿰뚫어보고 남편을 고위직에 승진시키는 과정의 주도면밀함은 남편을 출세시키는 비슷한 스토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어떤 여주인공들도 비교하기 어려운 경지로 보인다. 작품 전편을 통해 여주인공의 지혜와 의지, 담백한 성격 등 매력적인 캐릭터를 잘 형상화한 작품이다.

 

 

소망 둘, “양반도 인간이다!”

하층민들과 달리 양반은 분명 기득권층이지만 한편으론 예법의 굴레에 얽매어 인간 본성에 충실하지 못한 이들이었다. 또한 양반의 체모를 지키기 위해 추워도 춥다 못하고 굶어도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우스운 상황이 종종 연출되곤 했다. 야담 속에는 그러한 양반도 하층민들과 다름없는 인간임을 보여주는 내용이 많다.

「녹림호걸」 속 영남 갑부 양반은 중앙 권력의 도움이 필요했던 조선 후기 향촌 양반의 전형이다. 좋은 인연을 맺게 될 줄 알았던 서울의 박교리가 실은 월출도의 도적 두목으로 밝혀지면서 영남 양반의 꿈은 좌절되고 막대한 재산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두목은 재물이 천하의 공기(公器)라며 생장과 소멸의 이치를 들어 도적질을 정당화하는데, 애당초 영남 양반의 욕심이 자초한 낭패이기에 그 말이 뻔뻔하게만 들리지 않는다.

「채생의 기이한 만남」은 조선 후기 야담계소설 가운데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몰락해가는 양반계급을 대표하는 채생의 부친과 상승하는 중인계급을 대표하는 거부 역관(譯官) 김령을 등장시켜 그 대조적인 생활 정경과 인물의 성격 및 심리 상태를 사실적으로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조선 후기 사회 변동의 한 국면을 솜씨 있게 드러냈다.

「심씨 집 귀객」은 사돈의 도움으로 겨우 끼니를 이어 가던 가난한 양반 집에 귀신이 날마다 찾아와 밥을 얻어먹고 돈을 빼앗으며 괴롭히자 양반은 남의 집 돈으로 노자를 마련해 간신히 귀신을 내보냈지만 다시 그 귀신의 아내가 찾아와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는 내용의 짤막한 소품이다. ‘귀신 손님’이라는 설정이 황당무계하지만 양반가 주변에서 물질적 도움을 얻으려는 주변 존재를 비유한 것으로 본다면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체면치레를 위해 손님을 접대하고 온갖 비용을 지출하며 빈곤이 악화되어 갔던 빈한한 양반가의 생활상이 잘 그려진다.

 

 

소망 셋, 북벌(北伐)과 열녀(烈女)의 허망함을 비판한다!

「포천의 기이한 일」의 저자는 소론 가문의 일원인 19세기 인물 이현기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17세기 중반 송시열 등 노론 집권세력이 주도한 북벌론을 비판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효종·현종 때 영의정을 지낸 실존 인물 정태화鄭太和(1602~1673)이다. 젊은 시절 정태화가 경기도 포천의 현감으로 부임하던 날 밤에 정태화의 눈에만 보이는 귀신이 관아에 나타났다. 그 귀신은 조선의 개국공신 하륜(河崙, 1347~1416)이다. 폐허가 된 자신의 무덤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정태화의 신속한 조치 이후 하륜이 다시 나타나 두 사람이 나누는 작품 후반부의 문답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정태화가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 대의를 바로세우기 위해 청나라를 정벌해야 한다는 이른바 ‘북벌’의 향방을 묻자 하륜은 “중화를 존숭하는 대의를 출세의 계단으로 삼으며, 속으로는 오랑캐를 두려워하면서 겉으로만 아름다운 명성을 얻고자” 하는 세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효종 때 노론의 송시열 일파가 주도한 북벌론의 허상을 통렬히 지적한 말이다. 하륜은 실제 전쟁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북벌론자들이 꿈꾸는 전쟁 시나리오는 청나라의 국력과 주변 역학 관계, 조선이 당면한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말을 덧붙인 뒤 국정 쇄신의 방책이 오직 올바른 인재 등용에 있다고 했다. 개국공신과의 문답 형식을 빌려 북벌론과 조선중화주의(朝鮮中華主義)에 대한 19세기 소론 지식인의 비판적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야담으로서 보기 드물게 높은 정치의식이 투영된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길씨녀」는 평안도 양반의 서녀(庶女) 길씨가 당숙의 음모에 빠져 사또의 첩이 될 위기에 처했으나 결연한 의지로 절개를 지켰다는 내용이다. 권력에 굳세게 저항하면서 성적(性的) 자결권을 지키고자 했다는 점에서 「춘향전」을 떠올리게 한다.

「권진사」의 원제목은 ‘외엄구한부출시언’畏嚴舅悍婦出矢言(엄한 시아버지를 두려워하여 사나운 며느리가 맹세의 말을 하다)이다. 권생(權生)의 아내를 사납고 투기심 많은 여성으로 설정한 뒤 권진사와 며느리의 결말부 대화에서 여성의 투기를 거듭 경계한 데 주목하여 붙인 제목으로 보인다.

주인공 권생이 우연히 명문가 여성을 소실로 맞이한다는 작품 초반의 설정은 「채생의 기이한 만남」과 비슷하다. 그러나 「채생의 기이한 만남」에서 청춘과부가 된 딸의 앞날을 위해 부친 김령이 나선 반면 「권진사」에서는 누이동생을 위해 오빠가 나섰다. 이 작품에서 오빠는 서술 비중이 대단히 작지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오빠는 서울 사대부 명문가의 가장이지만 사대부가 여성의 개가(改嫁)를 금하는 세상의 풍속과 예법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누이를 시집보내려 했다. 일가친척의 시비가 크게 일어났다고 했으니, 공개적으로 벌인 일이다. 가문의 반대에 부딪힌 오빠는 결국 남몰래 누이를 권생에게 의탁하게 했다. 누이를 은밀히 재가시키고 돌아간 오빠가 어떤 행동을 했을지 궁금하지만 이에 관한 서술은 없다.

이 작품은 ‘개가’의 문제를 끝까지 밀고 나가기보다는 권생이 우연히 인연을 맺은 여인을 첩으로 들이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서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점에서 애초의 문제의식을 잘 살리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차례

기이한 하인 _임매 지음
도적 재상 _임매 지음
채생의 기이한 만남 _이현기 지음
심씨 집 귀객 _이현기 지음
여종의 안목 _이현기 지음
포천의 기이한 일 _이현기 지음
홍환 _이덕수 지음
길씨녀 _신돈복 지음
우병사의 아내 _노명흠 지음
소낙비 _작자 미상
녹림호걸 _작자 미상
권진사 _작자 미상

지은이·옮긴이

박희병

현재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한국전기소설의 미학』, 『한국의 생태사상』, 『운화와 근대』, 『연암을 읽는다』, 『유교와 한국문학의 장르』, 『저항과 아만』, 『연암과 선귤당의 대화』, 『나는 골목길 부처다-이언진 평전』 등이 있으며, 『나의 아버지 박지원』,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골목길 나의 집-이언진 시집』 등의 역서와 논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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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의 야담 1』에 이어 조선 후기에 창작된 야담계소설(野譚系小說) 열두 편을 실었다. ‘야담계소설’이란 야담(野譚), 곧 민간에서 구연(口演)되던 시정(市井)의 이야기가 한문으로 기록된 것 중 소설에 해당하는 작품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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