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춘향수절가
千년의 우리소설 15
발행일 | 2025년 6월 23일 |
---|---|
ISBN | 9791194442240 04810 |
면수 | 318쪽 |
판형 | 변형판 150x215, 양장 |
가격 | 22,000원 |
분류 | 千년의 우리소설 |
‘완판’과 ‘경판’, 「춘향전」의 두 가지 맛!
<통독>의 즐거움
「춘향전」의 뿌리는 판소리 「춘향가」다. 18세기 중반 이전에 이미 「춘향가」가 공연되었으니, 「춘향전」 또한 늦어도 18세기 후반에는 성립되지 않았을까 한다. 「춘향전」은 근대 이후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수많은 변화와 개작을 거쳐 140종 이상의 이본을 남겼다. 이 책에는 이본 중에서 작품성이 높은 「열녀춘향수절가」(완판 84장본)와 「춘향전」(경판 30장본)을 소개한다.
다양한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를 살며 책 한 권을 <통독>(通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히 읽는 텍스트의 양은 늘었는데, 유독 책만은 요약 발췌의 형태가 이미 대세를 이룬 듯하다. 뼈대만 남은 글로 작품 본래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을까? 정보 습득이 목적이 아닌, 작품 감상에 목표를 둔다면, 적어도 ‘고전’만은 완전한 형태로 한 글자 한 글자 음미하며 읽어야 그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한글 고어를 읽으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행간에 아래첨자 형태로 현대어 번역을 나란히 놓았다. 이 책에 마련된 두 종류의 「춘향전」을 맛있는 음식을 먹듯 마음껏 천천히 음미했으면 한다. 어느 쪽이 어떻게 맛있는지 품평하며 <통독>의 즐거움을 누렸으면 한다.
출판시장의 두 강자, 전주의 ‘완판’과 한양의 ‘경판’
조선 시대에 소설은 필사와 대여의 형식으로 유통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인 중 누군가 재미있는 작품을 창작하거나 좋은 책을 가지고 있으면 빌려 보다가 간직해 두고 싶으면 베껴 쓴다. 이렇게 베껴 쓴 책이 ‘필사본’(筆寫本)이다. 소설이 인기 상품이 될 만하다 싶으니 깨끗하게 베껴 쓴 책들을 모아 책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도서대여점, 이른바 ‘세책가’가 생겨났다. 18세기의 일이다. 다수의 독자에게 판매해도 이익이 남겠다 싶으니 출판업이 시작됐다. 소설의 상업적 출판으로 한정해 말하면 중국과 일본에 비해 많이 늦은 19세기의 상황이 아닐까 한다.
소설이 많이 팔리려면 내용이 재미있어야 하고, 또 작품 분량이 너무 길어서는 곤란하다. 1820년대에서 1860년대 사이에 창작되어 「춘향전」의 원형에 가장 가깝다고 알려진 「남원고사」는 디테일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다소 느슨한 줄거리에, 대중이 소화하기에 부담스러운 식자층의 언어가 곳곳에 섞여 있으며, 무엇보다도 분량이 많다. 「남원고사」를 스토리 위주로 축약한 것이 경판본(京板本)이다. 서울의 출판업자가 판각(板刻)해서 판매했으므로 ‘경판’(京板)이라고 불렀다. 35장본, 30장본, 23장본, 16장본 등 여러 종의 「춘향전」 경판본이 전하는데, 그중 대표 버전으로 꼽히는 것이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경판 30장본’ 「춘향전」이다. ‘30장본’이란 장수(張數)가 30장(오늘날의 60쪽)인 책이라는 뜻이다. 현재 전하는 경판본은 대개 1900년대에 출판된 것으로 추정된다.
1900년을 전후한 시기 경판본과 함께 소설 출판 시장을 양분했던 것이 완판본(完板本)이다. 전주를 ‘완산’(完山) 또는 ‘완주’(完州)라 했던바, 전주에서 판각한 것을 ‘완판’(完板)이라고 했다. 역시 84장본, 33장본, 29장본, 26장본 등 여러 종의 「춘향전」 완판본이 전한다. 그중 20세기 내내 가장 큰 관심과 사랑을 받은 대표 버전이 바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다. 완판본 소설은 1860년을 전후한 시기에 간행되기 시작해서 1900년대에 가장 활발히 출판되었는데, ‘완판 84장본’의 출판 시기는 1906년으로 추정된다.
‘완판 84장본’은 「남원고사」의 절반 분량이지만 여타의 완판본과 경판본에 비하면 월등히 분량이 많다. 짧은 소설을 선호하던 그 시대의 출판 시장에서 다른 출판본의 3배 분량에 이르는 84장의 책을 출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주에 상대적으로 긴 분량의 책을 구매해 줄 소비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전주 일대의 향리(鄕吏)들이 판소리의 주된 애호 계층이었고, 이들이 완판본 출판 과정에 적극 관여한 기록이 있어 ‘완판 84장본’ 출판 당시의 정황을 짐작하게 한다.
「열녀춘향수절가」와 「춘향전」,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이하 ‘완판’)와 경판 30장본 「춘향전」(이하 ‘경판’)의 가장 큰 차이는 춘향의 신분이다. 춘향의 신분 변화에 따라 주변 인물의 성격도 함께 변한다. 독자에게는 어떤 춘향이 더 익숙할까? 두 작품을 통독하며 내가 생각한 춘향이 어떤 춘향인지 찾아보자.
‘완판’과 ‘경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몇가지만 예를 들어 본다.
첫째, 기생 춘향과 양반가의 서녀 춘향
「남원고사」와 그 축약 버전인 ‘경판’에서 춘향은 시종일관 기녀다. 아버지의 정체는 분명치 않으나 점쟁이 판수와 친구 사이였다고 했으니 중인 이하의 신분으로 추정된다. 춘향이 이도령과 이별한 뒤 대비정속(代婢定屬)했다는, 곧 관청에 소속된 기생이 다른 사람을 돈으로 사서 자기 대신에 관청에 속하게 함으로써 천민 신분에서 벗어났다는 설정을 취했으나, 대비정속으로 기생 신분을 면했다는 춘향의 주장은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하기 위한 하나의 명분으로 작용할 뿐 법적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실질적으로 신분이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춘향의 대비정속 전까지 월매를 포함한 춘향 주변의 모든 인물은 춘향을 기생으로 인식했다.
반면 ‘완판’의 춘향은 단순히 기생 신분이라고 말하기 곤란하다. 춘향은 성참판의 서녀(庶女)다. 어머니가 기생이니 춘향의 법적 신분은 분명 기생이지만, 춘향은 월매의 말대로 “씨가 있는 자식”이어서 양반가 규수처럼 자랐다. 춘향 모녀 모두 춘향이 본질적으로 기생이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대비정속’의 장치도 필요 없다.
둘째, 연애를 주도하는 춘향과 음전한 춘향
‘경판’의 춘향은 이도령과의 만남에서 이별까지의 과정 내내 어떤 중개자도 없이 자기 혼자 모든 결정을 내렸다. 춘향은 오직 자신의 판단으로 이도령과의 만남을 허락하고 평생 잊지 않겠다는 문서를 받아낸 뒤 평생을 약속했다. 반면 ‘완판’에서는 월매의 역할이 두드러져 이도령과 춘향의 첫 만남부터 혼약을 맺는 일까지 모든 과정을 월매가 주도하고 결정했다. 춘향이 남녀의 사사로운 만남과 혼사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이 양반가 규수의 면모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경판’의 춘향은 처음 이도령이 찾아올 때 계단을 내려가 이도령의 손을 잡고 들어와 노래를 부르며 술을 따랐다. 반면 ‘완판’에서는 일곱 살에 이미 『소학』을 읽은 춘향이 다소곳이 앉아 이도령과 월매의 대화를 듣고만 있다. 「남원고사」의 춘향은 관아든 군졸의 집이든 무람없이 돌아다니고 ‘경판’의 춘향도 남원 10리 밖까지 나와 이도령을 전송하지만, ‘완판’의 춘향은 양반가의 예법에 따라 문밖을 나서지 않는 전형적인 양반가 규수의 모습이다.
셋째, 오만한 춘향과 서민의 지지를 받는 춘향
‘경판’의 춘향은 당돌하고 오만한 성격이어서 비록 자신이 아쉬울 때는 ‘오라버니’라 부르는 관아의 군졸이든 동료 기생이든 비슷한 신분의 사람들에 대해 특별한 연대 의식을 갖지 않았다(「남원고사」의 춘향은 지나친 도도함 때문에 주변 인물들과 불화하며 질시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 변학도의 모진 고문을 받고 옥에 갇히기까지 서민들의 특별한 동정과 지지도 받지 못했다. 반면 ‘완판’의 춘향은 변학도가 보낸 군졸들에게 잡혀가는 시점부터 이미 변학도를 제외한 관아 모든 이들의 동정을 받고 있었고, 그 뒤로도 기생(정확히는 행수기생을 제외한 기생들)과 농민은 물론 빨래하는 아낙에 이르기까지 서민 일반의 절대적인 동정과 지지를 받았다.
넷째, 절대악 변사또
‘경판’이든 ‘완판’이든 변사또는 악당이다. 하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선악이 혼재된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런데 ‘완판’에서의 변사또는 남원 부임 이후 전형적인 악인으로, 악인의 캐릭터가 더 강화된다. 그리고 이에 따른 춘향의 저항도 한층 격화된다. ‘완판’에서의 춘향의 분노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민중 일반의 분노를 대변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었다. 모든 「춘향전」에서 ‘사랑’과 ‘저항’은 한 몸이지만 ‘완판’은 상대적으로 분노와 저항 쪽에 무게중심이 놓여 있다.
다섯째, 잇속에 밝은 월매
‘경판’의 월매는 잇속에 밝은, 오직 눈앞의 이익에 따라 표리부동하게 움직이는 경박한 캐릭터다. 반면 ‘완판’의 월매는 품위 있는 양반가 마님의 면모를 가졌다. ‘경판’의 월매는 춘향이 수절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으므로 춘향과 갈등하지만, ‘완판’의 월매는 춘향의 의지를 잘 헤아려 춘향과 갈등하지 않는다.
여섯째, 호남 방언의 절묘한 리듬감 속에 녹아든, 청소년 관람 불가 <사랑가>
‘경판’의 표현도 훌륭하지만 ‘완판’의 정감 있는 호남 방언과 리듬감 있는 절묘한 표현은 작품의 재미와 함께 예술성을 높인다. 마치 판소리의 한 대목을 듣는 듯한 리듬감 있는 반복과 방언, “만첩청산(萬疊靑山) 늙은 범이 살진 암캐를 물어다 놓고 이는 없어 먹든 못하고 흐르릉 흐르릉 아웅 어루는 듯”, “주홍(朱紅) 같은 혀를 물고 오색단청 순금장 안에 쌍거쌍래 비둘기같이 꿍꿍 꿍끙 으흥거려 뒤로 돌려 담쑥 안고” 등의 성적이면서도 능글맞은 표현은 ‘완판’의 큰 매력이다. “이 궁 저 궁 다 버리고 네 양각(兩脚) 새 수룡궁(水龍宮)에 나의 심줄 방망이로 길을 내자꾸나!”(「사랑가」 마지막 문장) 우리 조상들의 성적 표현의 수위가 너무 높다. 요즘으로 치면 청불영화다.
학계의 「춘향전」 연구자는 크게 두 계열로 나뉜다. 서민 대중의 연대와 저항에 초점을 두어 ‘완판’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쪽이 있고, 풍부한 디테일 및 캐릭터와 서사의 일관성에 초점을 두어 「남원고사」와 ‘경판’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쪽이 있다.
어느 쪽이 「춘향전」의 원형에 가까울까? 「남원고사」와 ‘경판’ 쪽이다. 「남원고사」를 통해 그려 보는 「춘향전」의 원형에서는 ‘대비정속’이라는 장치도 없이 시종일관 춘향의 신분이 기생이었을 것으로 본다. 기생이면서 기생이기를 거부하며 엇비슷한 신분의 사람들과 어떤 동류의식도 느끼지 않는 오만하고 당돌한 춘향, 이미 평생을 약속한 연인이 있다는 이유로 기생 점고에 무단히 참석하지 않는 기생 춘향, 신관 사또의 수청을 끝내 거부하고 3년 동안 옥에 갇혀 모진 시련을 겪으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인정받고자 했던 춘향, 어떤 폭압과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마침내 사랑을 이루어 양반의 정실부인이 된 춘향, 이것이 춘향의 원형이라고 본다.
그러나 여기에 불만을 느낀 독자들이 작품을 고치고자 하는 욕망을 품었다. 기생이 양반의 정실부인이 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이런 생각에서 춘향의 신분과 성격은 교양 있고 다소곳한 양반 규수 쪽으로 바뀌어 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주변의 질시를 받아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에서 춘향은 누구나 사랑하고 연대하고 싶은 인물로 바뀌어 갔다. 춘향처럼 아름다운 사람의 엄마가 잇속만 밝히며 경망하고 변덕스러워서야 되겠느냐 하는 생각에 월매는 품위 있는 마님으로 바뀌어 갔다. 변학도 같은 인물이 밉지 않은 구석이 있는 코믹한 면모, 속이 무르기도 한 인간적인 면모를 가져서야 되겠느냐 하는 생각에 변학도는 점점 냉혹한 악인의 전형으로 변해 갔다.
「춘향전」은 21세기의 현대 작가들에 의해서도 여전히 개작되고 있다. 대중의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 속에 새로운 작가들의 개작 욕망을 자극하며 18세기 이래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변화해 온 것이다. 「춘향전」은 한 편의 소설 작품이 끊임없는 ‘자기 변화’를 보여 준, 매우 희귀한 사례다. 때로는 혁신으로, 때로는 퇴보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모든 변화는 자기 앞의 「춘향전」에 대한 나름의 불만과 그로 인한 개작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하나하나의 버전이 모두 의미 있는 존재다.
*
*
◎ 열녀춘향수절가(완판完板 84장본)
[상권]
숙종대왕 즉위 초
지리산에 빌어 낳은 춘향
봄나들이 나서는 이도령
광한루를 찾은 이도령
그네 타는 춘향
이도령과 춘향의 상봉
춘향을 그리워하는 이도령
사또의 착각
춘향 집에서의 만남
언약
사랑가
사랑놀음
이별
약속
[하권]
상사相思
신관 사또 행차
기생 점고
춘향 소환
춘향의 항거
십장가十杖歌: 매 맞으며 부르는 열 개의 노래
춘향이 옥중에서 부르는 노래
꿈에 간 황릉묘
해몽
장원급제
남원 가는 길
농부들
춘향의 편지
다시 찾은 춘향 집
옥중 상봉
변사또 생일잔치
어사출또
◎ 춘향전(경판京板 30장본)
제일강산 광한루
그네 타는 춘향
첫 만남 불망기
춘향을 그리워하는 이도령
춘향 집 구경
권주가
사랑 놀음
이별
신관 사또
매 맞는 춘향
꿈
장원급제
변사또의 쇠코뚜레 공사
다시 찾은 춘향 집
옥중 상봉
변사또의 생일잔치
어사출또
대단원
미주
작품 해설-전주의 「춘향전」과 서울의 「춘향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