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2 서예

박희병

발행일 2018년 9월 20일
ISBN 9788971999028 94600
면수 1288쪽
판형 신국판 152x225mm, 양장
가격 100,000원
한 줄 소개
조선 후기 최고의 문인화가 능호관 이인상, 그림과 서예, 전각의 모든 것!
주요 내용

20

20년의 결실, 통합인문학의 새로운 정립

 

이 두 권의 역작은 18세기 초중기에 활동한 문인화가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 1710~1760)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연구서이다. 책의 내용이 거의 다 새로운 발견으로 채워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이인상의 실존과 서화의 내적 관련을 근본적으로 되짚고 있다. 이런 작업은 수십 년의 학문적 지적 온축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저자 박희병의 평생의 인문학적 공부와 사유가 녹아들어가 있다고 할 것이다.

저자가 이인상 연구에 착수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시작은 이인상의 문집인 『능호집』(凌壺集)의 번역 작업이었다. 3년에 걸쳐 번역을 완료했지만 이인상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했다. 그런 가운데 2005년에 저자는 이인상의 후손가에서 『뇌상관고』(雷象觀藁)를 보게 된다. 이것은 『능호집』의 초고본에 해당하는 문집인데, 이 책에는 『능호집』에 없는 내용이 많았다. 저자는 『뇌상관고』를 면밀히 검토하여 이인상의 상(像)을 다시 그리게 되었고, 이인상과 관련한 의문들을 적잖이 해결했다.

애초 이인상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사상사적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문인화가인 이인상을 다루면서 그의 서화를 간과할 수는 없었다. 결국 저자는 이인상의 서화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문학 연구자인 저자에게 예술 쪽으로의 연구의 길은 험난했다. 서화 자료의 열람조차 쉽지 않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저자는 다시 10년에 걸쳐 차곡차곡 자료를 축적했다. 저자의 노력으로 이 책에는 현재 알려져 있는 이인상의 서화는 거의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다루게 되었다. 기존에 거론된 이인상의 서적(書跡)은 대표작 30점 안팎에 불과하지만, 저자는 많은 작품들을 새로 찾아내 본서에서 총 191점을 다루었다.

이 책은 초고 작성에만 3년이 걸렸으며, 초고를 고치고 다듬고 보완하는 데 다시 3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 책의 초고를 출판사에 넘긴 지 3년여 만에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통합인문학’이라는 저자 고유의 방법과 접근법에 있다. 근대 이후 예술, 문학, 철학 등 분과학문으로 분절된 시각이 아닌, 문사철과 예술을 통합적으로 연구해 일관된 질서와 해석을 부여했다.

이 책은 이인상의 시문(詩文)과 함께 그림과 서예를 통합적으로 연구했는데, 한국예술사 연구에서 이런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건 이 책이 처음이다.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이런 작업이 이처럼 철저하게 수행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시대 연구의 범위 또한 조선 후기에 국한되지 않고, 동아시아 문화권 전체를 시야에 넣어 연구했다. 저자가 ‘동아시아적 시각’을 취하고 연구에 임했기에, 이인상의 서화적 성취를 일국적 관점에 가두지 않고 동아시아적 위상을 문제 삼을 수 있었다.

 

 

 

‘이인상’이라는 새로운 인간의 성취

 

저자 박희병은 이인상의 문집 『능호집』의 완역본 출간(돌베개, 2016)에 이어, 이인상의 서화작품을 평가하고 분석한 이 책을 출간함으로써 문학가, 예술가로서의 이인상의 인간학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은 텍스트는 이인상의 작품으로 알려진 모든 회화와 서예다. 텍스트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텍스트의 내적·외적 맥락에 대한 파악이다. 그러므로, 이인상의 서화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텍스트와 관련된 전기적 및 문학적·사회적·정치적·사상적·예술적 맥락을 종횡으로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결국 이인상이라는 인간을 하나의 텍스트로서 구명(究明)하는 작업에 해당한다. 이인상의 서화에 대한 연구는 근원적으로 이인상의 정신과 의식에 대한 연구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서화를 매개로 한 인간 연구인 셈이다.

이 책은 이인상의 삶의 태도와 방식, 이념적 입장, 미학, 인간으로서의 가치 지향, 고뇌, 전기적 생애 등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자료들을 검토해 입체적·다층적으로 재구성해 냈다. 그 결과, 박제된 예술가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예술가의 상(像)이 복원되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평전(評傳)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은 평전이다. 즉, 회화와 서예를 따라가면서 쓴 이인상의 평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서술된 내용을 연대순으로 재배열하면 그 자체로 이인상에 대한 학문적인 빼어난 평전이 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이인상의 작품은 회화 64점, 서예 127점이며, 이윤영의 회화 12점, 이윤영 등 주변 문인들의 서예 작품 30점도 함께 다루었다. 아울러 이인상의 전각 30종과 이인상의 작은아버지 이최지의 전각 37종을 다루었다.

이인상의 회화는 그의 개인적 실존의 투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단호(丹壺)그룹’(단릉 이윤영과 능호관 이인상이 주축이 된 문인·지식인 집단)이라는, 18세기 전중반에 문제적 지식인, 문인들에 의해 형성된, 강고한 인간적 유대와 정치의식, 미적 취향을 공유한 집단의 세계관을 투사하고 있다.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1 회화』는 이인상 서화에 투사된 세계관이 개인과 집단의 변증법적 합치를 보여줌을 말하고 있다. 이인상의 서예는 그간 한 번도 학문적으로 제대로 연구된 바가 없다.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2 서예』는 이인상 서예의 미학적, 세계관적, 전기적, 동아시아적 연관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 해명이다.

이인상의 회화는 기존에 이인영의 회화로 소개된 작품 외에 본서에서 새롭게 보탠 작품은 두 점이다. <수루오어도>와 <영지도> 두 작품인데, <수루오어도>는 종래 이인상의 벗 이윤영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지만 이인상의 작품으로 바로잡았다. 또 서예는 기존에 소개되지 않은 이인상의 많은 작품이 소개되었고, 저자가 직접 탁본해 온 작품들도 다수 있다. 아울러 이인상의 전각을 별도의 항목으로 소개함으로써 전각예술가로서의 면모 또한 여실히 보여준다.

이인상은 평생 명예와 품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를 중시했다. 그는 특히 ‘부끄러움’, 즉 염치를 선비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했다. 이 때문에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장래를 늘 걱정했다. 이인상은 보수적 입장을 견지했지만 ‘보수’의 입장이기 때문에 이런 가치지향과 개결한 인간적 자세와 진정성이 나온다는 점에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간 당대의 진보적 인물을 주 연구대상으로 삼아온 박희병 교수는, 이러한 점 때문에 이인상에 좀 더 주목하였고, 한국 사회가 이인상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문헌고증에서 예술사회학으로!

 

이 책은 엄밀한 학적 고증에 기초하고 있지만, 고증은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고증에 매몰되지 않으며, 고증에서 출발하되 최종 귀결은 이인상의 정신과 미학을 논하는 것에 이르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문헌고증에서 출발해 예술사회학으로 귀착되고 있다 하겠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의 이인상 연구에서 간과되거나 잘못 인식된 많은 부분들을 바로잡았고, 새로운 개념을 정립했다.

 

 

  1. 진경산수에서 본국산수로!

 

저자는 이 책에서 ‘본국산수’라는 새로운 개념을 선보인다. ‘본국산수화’는 본국의 산수를 그린 그림을 말한다. 조선 시대 미술사 연구에서는 ‘진경산수화’ 혹은 ‘실경산수화’라는 용어가 흔히 사용되고 있다. 기왕에 사용되어 온 이 말을 쓰지 않고 왜 굳이 새 말을 만들어 쓰는가?

사실, ‘진경’(眞景)과 ‘실경’(實景)은 같은 뜻이며, 의미상 차이는 없다. 단 ‘진경산수화’라는 용어에는 강한 이데올로기적=민족주의적 성향이 함의된 반면, ‘실경산수화’라는 용어에는 동아시아 회화의 보편성을 염두에 둔 객관성이 자리한다는 차이가 있다.

진경산수화라는 말의 불편함은 그렇다 하더라도, 왜 굳이 실경산수화라는 말 대신 본국산수화라는 말을 새로 만들어 쓰는 것인가? ‘실경산수화’는 엄밀히 정의한다면 실제의 산수를 보고 그린 그림을 말한다. 그러니 화가가 실제의 산수를 보지 않고 상상으로 그린 그림이나, 다른 화가가 실제의 산수를 보고 그린 그림을 참조해 그린 그림은 실경산수화라고 하기 어렵다.

이인상의 그림 중에는 실경을 직접 보고 그린 것은 아니되 조선의 특정한 산수를 그린 것이 있다. 이를테면 이인상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장백산도>(본서 1. 회화 220면 참조)가 그러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실경산수화라는 개념 속에 포섭되기 어렵다. ‘본국산수화’라는 개념이 필요한 건 이 때문이다. 본국산수화 개념에서는, 특정한 그림이 실경인가 아닌가는 반드시 중요하지 않다. 화가가 본국의 산수를 그린다고 그린 그림은 모두 이 개념 속에 포섭된다. 따라서 본국산수화는 실경산수화를 포함하되 그보다 외연이 더 넓다고 할 수 있다.

 

 

  1. 이인상은 특정 화파에 국한되지 않으며,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

 

이인상의 그림은 중국 안휘파(安徽派)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런 주장은 이인상 연구의 초창기에 제기된 이래 지금껏 아무 의심 없이 통용되고 있다. ‘안휘파’라는 용어는 중국 안휘 제(諸) 화파(畵派)의 지역적 기반과 특성을 무시한 채 안휘 출신의 화가 전체를 하나의 화파로 묶은 것이며, 이 용어는 다채로운 안휘 회화사를 과도하게 단순화시킨다. 결정적으로, 중국 학계에서는 ‘안휘파’라는 용어를 화파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본다면 종래 우리 학계에서 사용해 온 안휘파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큰 문제다.

종래 이인상의 화풍이 안휘파의 영향이라고 생각한 것은 한국 미술사학자들이 가진 일종의 ‘고정관념’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국 화가의 새로운 기법이나 화풍의 뒤에는 반드시 중국 화가의 새로운 기법이나 화풍의 영향이 있다는 사고가 그것이다. 그러니 연구의 핵심 과제는 어떻게든 그 영향 관계를 밝히는 것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인상이 회화 교본을 공부하고 이런저런 판화책을 열람한 것을 토대로 스스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게 된다.

실제로 이인상은 《정씨묵원》, 《개자원화전》, 《고씨화보》, 《당시화보》 같은 회화 책뿐만 아니라 산수 판화책인 《명산도》를 보았다. 이인상은 이런 책들을 통해 그림을 공부한 것이라 짐작된다. 즉, 이인상의 그림은 어느 한 화파에 국한된 것이 아닌, 부단한 자기학습을 통해 이룩한 성취임을 이 책은 밝혀냈다.

 

 

  1. 이인상의 그림은 서얼화가 아니다.

 

학계에는 이인상의 그림이 동아시아에 유일한 ‘서얼화’라는 주장이 있다. 저자는 이 주장이 이인상의 그림과 인간 이인상에 대한 큰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종래의 연구 중에는, 이인상의 <검선도>(본서 1. 회화 236면 참조)에 그의 서얼의식이 표출되어 있으며 이 그림을 ‘서얼화’로 규정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있는데, 이는 그림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려니와 이인상이라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송변청폭도>(일명 <송하관폭도>)의 해석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되니, 이 화폭 속의 크게 굽은 소나무를 서얼 이인상의 표상으로 본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소나무를 다르게 본다. 이 소나무는 역경 속에서도 결코 더럽혀지지 않고 고집스레 자기를 지키고 있는 존재를 표상하고 있다고 본다. (본서 1. 회화 172~173면 참조.) 전후 맥락을 자세히 따지지도 않고 화가의 신분 하나로 작품의 의미를 재단해 버리는 환원주의적 도식에서 나온 주장으로 보인다.

 

 

  1. 이인상 생애 고증의 오류

 

저자는 이인상의 문집 2종과 서화 작품의 관지 그리고 이인상이 교류한 주변 문인들의 문집 및 서화 작품의 분석을 통해(이인상 주변 문인들의 서화 작품을 부록으로 소개했는데, <1.회화>에서는 이윤영의 회화 작품을 수록해 분석했으며, <2.서예>에서는 이윤영, 송문흠, 오찬, 김상숙, 김순택, 이양천 등 6인의 서예 작품을 분석했다.) 이인상의 생애와 관련한 중요한 오류를 밝혀냈는데, 그중 큰 오해를 불러 올 수 있는 지명의 오류를 아래에 예시한다.

 

종강(鐘岡) ‘鐘岡’은 ‘鐘崗’이라고도 표기하는데, 서울의 명동 종현(鐘峴)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북고개 혹은 북달재라고 한다. 기존 연구에서는 모두 ‘종강’을 이인상이 고을 원을 지낸 음죽(陰竹: 일명 설성雪城. 지금의 경기도 이천군 장호원읍 일대)의 지명으로 보았으며, 이인상이 음죽 현감을 그만둔 1753년 이래 이곳에 모루(茅樓)를 지어 죽을 때까지 ‘은거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인상 만년의 그림에는 은거의 뉘앙스가 강하다고 해석해 왔는데, 이는 오류이다. 종강은 명동성당이 있는 종현, 즉 북고개를 말하고, 이인상은 음죽 현감을 그만둔 뒤 서울로 올라와 이곳에서 살았다. 연도로는 1753년 12월부터이며, 종강의 모루(茅樓)에 거주한 것은 1754년 6월부터다.

이인상은 1753년 8월 명동의 종강에 동사(東舍)와 서사(西舍) 두 채의 초가집(이 집이 바로 ‘뇌상관’雷象觀이다)을 짓기 시작했다. 이 해 12월 무렵 동사가 완공되고, 익년 6월에 서사가 완공되었다. 동사는 부녀가 거주할 공간이고, 서사는 이인상이 거처할 공간이었다. 동사와 달리 서사는 다락집으로 건립되었다. 이인상은 1754년 6월 10일 서사에 입주했으며, 이를 기념해 「모루명」(茅樓銘)이라는 글을 지었다. 「모루명」이라는 글제 중의 ‘모루’(茅樓)는 곧 서사를 말한다. 이인상은 한 달 뒤인 7월에 종강의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祭鐘崗土地神文」·「又告鐘崗土地神文」·「茅樓銘」; 『뇌상관고』 제5책).

 

남간(南澗) 종래 남간을 경기도 양주 근처의 어디라고 보았는데 잘못이다. 이인상의 시문과 서화의 제화에는 남간이라는 명칭이 허다하게 나온다. 남간은 이인상이 살던 남산 집 근처의 시내를 말한다.

이인상이 남산에 집을 마련한 것은 그의 나이 32세 때인 1741년이다. 그의 벗인 신소(申韶)가 돈 30냥을 대고 송문흠(宋文欽)이 주선하여 남산의 ‘고봉절간’(高峰絶澗)에 초옥 세 칸 가량을 지어 이인상에게 살게 하였다.

이 집은 송문흠에 의해 ‘능호관’(凌壺觀)이라 명명되었는데, 바로 남간 근처에 있었다. 『능호집』 권1에 수록된 「송사행의 계방잡시에 화답하다」 중의, “북악(北岳)의 구름이 눈에 드는 곳 / 남간南澗에 새로 집을 옮겼네 / 선조의 사당 곁에서 채소 가꾸니 / 어머니께서 한결 기뻐하시네”(北山雲在望, 南澗屋新遷. 種蔬先廟側, 慈母一懽然)라는 구절에서 그 점을 알 수 있다. 이인상이 유년 시절을 보낸 조부 집 역시 바로 이 남간 부근에 있었으며, 고조부 이경여의 사당도 그 부근에 있었다. 이처럼 이인상에게 남간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었다.

남간은 단호그룹의 주요한 본거지이기도 하다. 이인상은 이곳에 있던 자신의 집 능호관 부근에 초루를 지은 바 있다. 그리고 벗들과 남간에서 종종 문회(文會)를 가졌다. 이인상은 20대 이래 평생에 걸쳐 남간에서 벗들과 만나 시를 짓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므로, 현재 전하는 그의 그림 중에는, 비록 실경은 아니라 할지라도, 남간에서의 흥취와 체험이 미적으로 반영된 그림들이 상당수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남간이 어딘지 모른 채 진행되어 온 종래의 이인상 연구는 큰 문제가 있다 할 것이다.

 

 

  1. 작품 분석의 오류-회화편

 

동양화 연구, 특히 문인화의 감상과 연구에서는 관지(그림에 붙인 글씨)의 정확한 해독과 해석이 굉장히 중요하다. 관지 속에는 작품을 창작한 배경, 등장인물, 창작자의 고뇌가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한국미술사 연구에서는 이 점이 소홀히 되거나 간과되었다. 그래서 그림에 대한 엉뚱한 해석이나 잘못된 이해가 적지 않다. 그림의 제목이 황당하게 잘못 붙여진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아래에 몇 가지 사례를 열거한다.

 

_ 이인상의 회화 <강반모루도>의 경우, 종래 이 그림은 ‘남간추색도’ 혹은 ‘남간추일도’라 불려 왔지만, 이는 관지를 오독한 결과다. 관지는 “南澗秌日 漫寫. 元霝.”이라 되어 있고, 이것을 번역하면 “남간에서 가을날 붓 가는 대로 그리다. 원령.”이라 해석할 수 있다. 즉 ‘남간추일’은 그림의 제목이 아니라, 이 그림을 그린 장소와 때를 말한다. (본서 1. 회화 188면 참조.)

_ 이인상의 회화 <추강묘연도>의 경우, 종래 이 그림의 제목은 ‘모정추강도’로 불리어 왔다. 여기서 모정(茅汀)은 이인상이 살던 향리이다. 그리고 이인상의 형 이기상은 양주군 회암면 모정리(茅汀里)에서 그 지명을 취해 ‘모정자’(茅汀子)라 하였다. 실제 이 모정 지역에는 그림에 묘사된 것과 같은 강이 없다. 따라서 제화의 표현 “秋江渺然, 一瀉千里”(가을 강 아스라한데, 일사천리로 흐르누나)에서 따와 ‘추강묘연도’로 제목을 바꾸었다. (본서 1. 회화 178면 참조.)

_ <송변청폭도>는 종래 폭포를 감상하는 고사의 한적한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해석되어, 그림의 제목도 ‘송하관폭도’로 불리어 왔다. 하지만 이는 이 그림을 그린 이인상의 마음, 이인상의 내면을 이해하지 못한, 완전히 틀린 해석이다. 관지를 주의 깊게 음미하고, 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수창할 때 함께했던 인물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이 그림이 영조가 함경도로 유배 보내 그곳에서 죽은 절친 오찬의 죽음을 슬퍼하며 영조의 처사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관지에 인용된 문구는 연산군 때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26세의 나이로 목숨을 잃은 박은(朴誾, 1479~1504)의 시 중 일부이다. 오찬은 1751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자마자 정언(正言) 벼슬에 보임되어 영조에게 직언을 올렸고 이 직언이 영조의 심기를 건드려 함경도 삼수에 유배 가 그해 11월에 3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박은의 생애와 오찬의 생애는 닮았다. 이 그림은 1754년 가을에 그려졌고, 당시 함께했던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이 그림이 오찬과 관계있음을 알 수 있다. 종래 이 그림은 서얼화로 해석되기도 했다. 구부러진 소나무가 서얼 이인상의 처지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인데, 지나친 억측이다. (본서 1. 회화 154면 참조.)

_<둔운도>(일명 ‘와운’)는 관지를 오독하여 엉뚱하게 해석했다. (본서 1. 회화 460면 참조.)

_<수루오어도>는 관지를 잘못 해석해 이인상의 벗 이윤영의 그림으로 소개되어 왔는데, 이인상의 그림이다. (본서 1. 회화 690면 참조.)

_<병국도>는 만년작으로, 만년 이인상의 우수를 표현하고 있으며, 그 필치도 성숙한 것으로 보아 왔는데, 관지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한 해석이다. 이 그림은 이인상이 24세 때 그린 초년작에 해당한다. 관지를 통해 그 점을 알 수 있다. (본서 1. 회화 62면 참조.)

_<수하한담도>의 그림을 그린 시기와 작화 상황은 종전에 잘못 이해되어 왔다. 첫날 김하상의 집에서 벗들과 노닐며 그린 그림을 이튿날 남산의 임매 집에 벗들이 다시 모여 감상하고 여러 명이 제화한 그림이다. 이 점을 고증을 통해 자세히 밝혔다. (본서 1. 회화 726면 참조.)

_<송하수업도>는 아직도 이인상의 그림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그 필치나 정신이 이인상의 그림이 아니다. 이 그림을 이인상의 그림이라 하는 것은 이인상의 그림과 필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름을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본서 1. 회화 952면 참조.)

 

 

  1. 작품 분석의 오류-서예편

 

종래 서예 연구에서는 글씨의 내용은 고려하지 않고 글씨의 조형미에만 관심을 가져왔다. 이는 잘못된 방법이다. 이 책에서는 글씨의 의미와 표현, 내용과 형식을 통일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아래에 몇 가지 그러한 경우를 소개한다.

 

_ 이인상의 팔분이 이인상 고유의 것임을 해명했다. 이를 ‘이인상식 팔분’으로 명명하고, 그 동아시아적 의의를 논했다. (본서 2. 서예 67면 참조.)

_ 이인상 전서의 성립 과정과 연원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이인상이 17세기 후반 청에서 나온 《광금석운부》라는 자서를 중시했으며, 이 책을 참고해 가며 당나라 이양빙의 전서와 진나라 이사의 전서를 넘어 더 상고시대의 전서로 깊이 들어갈 수 있었음을 자세한 글자체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 문자학에서 말하는 고문과 금문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이는 17세기의 미수 허목의 전서와 비교됨직하다. 이 책에서는 미수 허목과 이인상 전서의 성취를 비교해 다루고 있다. 이인상이 상고시대의 전서, 즉 고전을 쓰고자 한 것은 그의 이념 및 세계관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 점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_<능호필>은 이인상 전서의 호쾌함을 보여주는 굉징한 작품이라고 평가되어 왔으나 이 글씨는 호쾌하지도 않을뿐더러 이인상의 필획의 자유롭고 굳센 면모를 보여주고 있지도 않다. 이인상의 글씨가 아니다. 아울러 국립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능호관 유묵>도 종종 이인상의 글씨로 언급되나 그 전체가 이인상의 필치가 아니다. 또 유홍준 교수가 발굴해 소개한 <서소관란>도 앞의 ‘서소’ 두 글씨는 이인상의 것이 아니다.

차례

책머리에
감사의 말
일러두기

서설 방법과 시각

1 《묵희》墨戱
2 《원령필》元霝筆
3 《해좌묵원》海左墨苑
4 《보산첩》寶山帖
5 《능호첩凌壺帖 A》
6 《능호첩凌壺帖 B》
7 《단호묵적》丹壺墨蹟
8 《묵수》墨藪
9 난정서 외: 전서
10 산정일장 외: 팔분
11 유행주귀래, 여김자신부부 외: 해서
12 회담화재분운 외: 행서·행초
13 이윤영에게 보낸 간찰 외: 간찰
14 사인암찬 외: 금석문

맺음말

부록
부록 1 이인상의 전각
부록 2 이최지의 전각
부록 3 단호그룹 인물들의 글씨
부록 4 이인상의 글씨가 아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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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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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옮긴이

박희병

현재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한국전기소설의 미학』, 『한국의 생태사상』, 『운화와 근대』, 『연암을 읽는다』, 『유교와 한국문학의 장르』, 『저항과 아만』, 『연암과 선귤당의 대화』, 『나는 골목길 부처다-이언진 평전』 등이 있으며, 『나의 아버지 박지원』,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골목길 나의 집-이언진 시집』 등의 역서와 논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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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100자평
20년의 집필, 10년의 편집, 통합인문학의 놀라운 결실! 이 두 권의 역작은 18세기 초중기에 활동한 문인화가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 1710~1760)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연구서이다. 책의 내용이 거의 다 새로운 발견으로 채워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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